[淸河칼럼] 무에 하랴, 좌이대단(坐以待旦)의 리더십이 없을진대
[淸河칼럼] 무에 하랴, 좌이대단(坐以待旦)의 리더십이 없을진대
  • 박완규
  • 승인 2016.01.03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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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고시대 정치기록인 ‘서경(書經)’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은나라를 세운 탕왕의 손자 태갑(太甲)은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선조가 나라의 근간으로 만든 제도를 무너뜨린다. 탕왕을 도운 건국공신으로 재상이 된 이윤(伊尹)이 그 잘못을 지적하며 고치도록 간언하였다.

"선왕께서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부터 크게 덕을 밝히고자 앉아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으며, 널리 뛰어나고 어진 이들을 구하여 후손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先王昧爽丕顯坐以待旦旁求俊彦啓迪後人). 선왕의 명을 어겨 스스로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삼가 검약의 덕을 밝혀 길이 도모하소서."

그러나 태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전횡과 기만을 일삼았고, 결국 이윤을 비롯한 중신들은 그를 동(桐)이라는 곳으로 쫓아 버리는데, 태갑이 그 곳에서 잘못을 뉘우쳐 3년 동안 어질고 의로운 일을 행하였으므로, 이윤은 그를 다시 권좌에 앉혔다.

맹자(孟子)는 주나라 기초를 다진 주공(周公)에 대해 “우왕과 탕왕, 문왕무왕의 좋은 점들을 겸하고 그들이 행한 네 가지 선정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 가운데 적합치않는 점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 밤낮없이 생각했으며, 다행히 그 이치를 깨닫게 되면 이를 즉시 실행하기 위해 앉아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셨다(其有不合者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旦)"라고 칭송했다.

여기서 유래한 좌이대단(坐以待旦)은 어진 정치를 펴고자 하는 군주의 충정이나 맡은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밤낮없이 힘쓰는 성실한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다. 앉아서 새벽을 기다리며 오로지 나라의 존안을 위해 고민하는 리더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작금의 국기원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리더십 부재의 우리 태권도 사회에 주공과 같은 지도자가 얼마나 절실한 지 새삼 일깨워준다. 세계태권도본부라 일컫는 국기원의 홍문종 이사장이 시공을 뛰어넘은 전횡자(專橫者) 태갑의 현신으로 비춰지는 까닭이다.

국기원 집행부가 태권도 근간을 흔드는 ‘월단특심’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대놓고 단증 장사하려다 거센 저항에 부딪치며 분란사태가 일파만파로 치달아 국기원 존립기반이 무너질 지경인데도 서둘러 철회시키긴커녕 꼼수 짓거리를 방조한 채 또 다른 분란소지나 만드는 행태는 과연 수장의 자세인지 개탄스럽다.

정권 실세로서의 오만이나 태권도를 우습게 보는 특권의식이 아닌 다음에야 만민 태권도인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나, 심지어 새누리당사까지 달려가 알몸시위를 할 정도로 반대하는 제도를 마땅히 모르쇠로 치부하는 후안무치는 스스로 더 이상 국기원 이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되짚어 보자. 이사장 선임 당시부터 편법선출로 잡음을 일으키고 취임하자마자 정관개정을 획책한 것은 물론 상근임원도 1년을 넘긴 뒤에 구성하는가 하면, 정치일정을 핑계로 이사회를 무단 취소하고 일방적인 신임이사를 발표하는 등 국기원 분란을 조장한 당사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초청받지도 않은 ‘L.A. 한인의 날’ 행사에 참석하느라 쓴 체재비 등이 공금횡령 등으로 논란이 일자 전액반납하며 회계부정을 스스로 인정했고, 적법절차를 무시한 업무용 차량구입 비용 역시 업무상배임으로 고발당하는 등 국기원 예산을 제멋대로 유용하다 비난받았던 그다.

국기원 예산을 300~500억원으로 증액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이사장으로서 국기원을 위해 한 일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도, 오히려 호가호위 하는 내부자의 아첨에 상응해 활동비 명목으로 매월 500만원씩 받아 챙겼던 뻔뻔한 지경에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국회의원으로서는 또 어떤가. 3선 의원으로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그는 올 4월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2억원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도 유야무야 빠져 나온 무소불위의 능력자이다.

진작에 국회의원의 체육단체 및 이익단체 겸직을 불허하는 내용의 국회법이 발효됐지만 홍문종 의원은 사직권고 대상임에도 국기원은 국제기구라 예외라는 택도 없는 논리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대한태권도협회장을 겸하며 같은 입장이었던 김태환 의원은 뒤늦게나마 내년 1월말 사퇴 의사를 밝힌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밥값을 하려 했던가. 홍 이사장은 지난 8월 김철기 감사를 대동하고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최중화 국제태권도연맹(ITF)총재를 만났고, 이날 회동을 통해 국기원과 ITF 간 공조와 협력을 다지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만난 ITF는 최근 세계태권도연맹(WTF)과 소통중인 그 단체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ITF는 창설자인 최홍희 총재가 사망한 뒤 3개로 찢어져 서로 자기가 정통성을 가졌다고 우기는 형국이다. 그러나 WTF가 공식 인정하고 접촉하는 단체는 북한 ITF로, 태권도의 통합과 남북화해로 통일무드를 조성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치기인지 공명심의 발로인지 모르겠지만 현 정권의 실세란 자가 적극 지지해도 모자랄 판에 재를 뿌린 꼴이 아니던가.

한 나라를 이끄는 권력의 핵심인물이 한낱 경기단체에 불과한 국기원의 수장 노릇도 제대로 못하니, 백골이 진토된 태갑이 꿈에 나타나 “어디다 비견하냐”며 버럭할까 두렵다. 본디 무인 출신이 아니고 태권도에 대한 애정도 없었던 터, 이즈음 ‘밤낮없이 고민하고 깨우쳐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던’ 주공의 리더십을 일깨워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홍문종 이사장의 아름다운 퇴진 소식이, 더불어 본연의 책무와 권위를 되찾은 국기원의 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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