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멘토링➂] 言路, 기자의 길을 묻는 청년에게
[淸河멘토링➂] 言路, 기자의 길을 묻는 청년에게
  • 박완규
  • 승인 2017.09.05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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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者는 현장에 살고, 현장에서 사라진다

 

 

 


#발로 쓰라

“언제나 먹을 수 있고, 어디서나 실컷 잘 수 있고, 틈을 보아 배설한다”

기자의 건강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한 여객선 침몰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어떤 기자는 4일간이나 꼬박 추위와 싸우면서 겨울 바다 위에서 지새웠다. 필자가 사회부 기자 시절 매일 경찰서에 상주하며 새벽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취재하고, 다시 한번 병원에 들러 사건의 유무를 확인했다.

나는 이렇게 하기를 5년 반, 연시간으로 셈하면 1천 9백시간이나 남보다 더 일했다.

오직특종기사를 캐내기 위해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언뜻 생각하면 바보스럽기까지 하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열의와 건강이 없으면 아예 기자의 직업을 단념하는 게 좋다.

외국, 어떤 신문사 중역은 ‘재직 10만 시간’이란 글에서, 50여 년 간의 개근기록을 세웠다. 편집부장 시절의 그는 아침 9시에 출근, 오밤중까지 거머리처럼 책상에 붙어서 일을 해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신문의 경우도 수두룩했었다.

상선(商船)대학의 시험은 학과보다 신체가 앞선다. 외국의 경우, 기자 채용시험엔 신체검사가 매우 까다롭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점차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로에다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자들의 수명이 비교적 짧은 건 여러 모로 생각할 문제인 것 같다.

“발은 쉬기 위해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저널리스트는.” 기자의 현장정신을 말한 것이다. 발로 조사해서 머리로 쓰는 게 기자다.

세계적인 명기자 레스톤의 말을 상기해보자.

“나는 별다른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두 개의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어디에 가면, 누굴 만나면 필요한 뉴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그걸 부단히 수집하는 것 뿐이다.”

현장에 밀착하라는 뜻이다. 바다에서 호랑이를 잡겠다는 건, 현장정신을 팽개친 것이다. 바다에서 싸우다, 바다에서 사라지는 게 어부의 일생이다.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사라지는 게 기자의 일생이 아닐까?

희귀새를 찾아 며칠 동안 설악산 깊숙이 헤맨 어떤 사진기자가 있었다. 그는 눈사태로 목숨을 잃을 뻔했는가 하면 간첩으로 오인,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잡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어족보호의 취재 때문에 먼 바다에서 며칠이나 비바람과 싸운 기자도 있다. 모두가 공익의 감시를 위해 현장 깊숙이 파고 든 기자들의 모습이다 .

현장정신은 이를 테면 답사(踏査)정신이기도 하다. 현장을 지키는 불침번, 이것이 기자의 일이다. 죤 간서 같은 대기자는 엄청난 내막기사를 쓰기 위해 현장 깊숙이 여행을 거듭했다. 대기자 솔즈버리도 그랬다. 그들은 70이 넘은 노기자들이지만 늘 현장에 두 다리를 굳게 뻗치고 있었다.

이름을 숨긴 어떤 독지가가 달마다 경찰서에 금일봉을 전했다. 불우 소년들을 위해서. 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기자는 밤낮 가리지 않고 몇 달 아니 반년을 헤매었다. 결국 그는 독지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독지가는 남몰래 선행하기를 애원했다.

훌륭한 기사거리가 된다. 그러나 기자는 이를 단 한 줄의 기사로도 옮기지 않았다. 여기서도 기자의 현장주의가 얼마나 끈질기고 고달픈 것인지 짐작이 된다.

'상재현장(常在現場)' 현장은 모든 정보의 수원지이다. 현장은 기자의 싸움터이다.

「발로 쓰라」는 건 발가락으로 쓰라는 뜻이 아니다.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서 기사거리를 캐내라는 뜻이다.

간추리면 전신 투구적인 취재를 뜻한다. 기자의 발은 쉬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다. 취재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머리는 생각을 하며 발은 취재거리를 캐낸다는 뜻이다. 하나라도 더 주워 담으면 그만큼 더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넘치는 활력 그리고, 속전속결

대체로 내향적인 사람은 기자 직업에 적당치 않다. 외향성인 사람이 기자 직업에 적당하다.

지칠 줄 모르는 활력, 이것이 기자의 원동력이다. 뛰어난 자는 모두 불사조처럼 활력이 넘쳐 흐른다. 자기 일에 아낌없이 자기를 불사르는 활력, 그건 대기자의 자질을 말해 준다.

액티브한 성격이 기자의 적성이다. 네거티브한 성격은 여러 모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자의 원조 격인 여운형, 이상재, 홍종인 같은 분은 전통적인 외향성 기자들로 알려졌다. 그들은 아무리 나이 들어도 활력에 넘쳤다. 싱싱하다. 구김살이 없다. 명랑하다. 꽁생원이 아니다. 적극적이다.

고희를 앞둔 한 노기자는 지금도 느닷없이 기자회견에 나타나서 질문을 퍼붓는다. 일선 기자들과 나란히 앉아서…. 거리에 나왔다가도 쓸 원고가 있으면, 집무실에 처박혀서 집필을 해낸다.

활력 덩어리인 그 선배를 젊은 기자들은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기자는 시간의 벌레다.

그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마감시간이라는 사선이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난 생선은 싱싱하지 않다. 기자들의 시간 관념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늘 싱싱한 정보를 쫓기에 바쁘다.

속전속결, 예상판단에 날카로와야 한다. 하나를 보고 전체를 파악한다. 빨리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꿰뚫어 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중간적 결론을 제때 제때에 어김없이 내려야 한다.

제때의 일을 제때에 해치워야 한다. 게으름뱅이가 돼서는 싱싱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속전속결을 평상시의 예비지식에서 온다. 그러기에 늘 생각하고, 늘 관심을 지녀야 한다.

뭣인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습성은 훌륭한 기자를 만든다. 이런데 자신이 없으면 기자의 적성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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