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나눔의 행복
[淸河칼럼] 나눔의 행복
  • 박완규
  • 승인 2012.08.21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혼잡한 사회 속에서도 좋은 문화현상이 일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요즘 여기 저기서 ‘나눔’이란 말과 실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이다. 나눔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시혜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나누는 호혜(互惠)적인 느낌이다.

조상 대대로 삶의 방식이기도 했던 ‘나눔’이 우리 사회에 건강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물질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누며 나눔의 정신적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눔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은 물론이다. 정부의 제도 지원이나 기업 차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좋은 예다.

사실 나눔은 우리에게 낯선 삶의 양식이 아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계, 품앗이, 두레까지 올라갈 것도 없다. 우리 조상들은 슬픈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십시일반으로 서로 도우며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후 격변해 온 한국 사회에서 친지끼리, 마을 사람끼리 서로 돕는 문화가 없었으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에는 이웃 간에, 친지 간에 기본적인 ‘신뢰(trust)’가 존재했다.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개인주의 바람이 불다가 요즘 다시 나눔에 주목하게 된 것도 신뢰를 재건하려는 자연스러운 귀소본능의 소산이리라.

25여 년 전 처음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에 나눔이 많이 확산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일에 쓴다고 해도 기부금을 걷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나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할 점은 있다.

우선, 나눔을 실천하는 계층이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나눔은 주로 단체를 통해 이뤄진다. 그 중에서 종교 단체 혹은 특정 정치 이념을 지닌 시민 단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나눔이 쉽게 활성화되지 않고 기존에 하던 사람이 계속 하는 식이다. 또 일정한 나이에 사회적 성공을 거둬야지 ‘통 큰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오산도 한다. 나눔에는 연령이 따로 없다.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나눔을 실천하게끔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한다.

수 해 전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여성 살인범들을 심층취재 한 적이 있다. 일대일로 만나 이들의 심리 등을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흉악하기만 할 것 같은 이들 중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감방에서 수형자가 아기를 낳으면 18개월까지 키울 수 있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데 먹을거리를 아껴서 아이에게 주고 자유시간에 책을 읽어주는 수형자를 보며 나눔이 꼭 무슨 조건이 충족된 후에야 하는 것은 아님을 체감했다.

또, 나눔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부자(Donor)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명예(Honor)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눔 행위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만 내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좋은 예다.

미국과 한국, 양국의 교회를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십일조’는 소득의 10퍼센트를 교회에 내는 것을 뜻한다. 십일조를 언급할 때 한국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하는 듯했다. 소득뿐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간, 애정, 지식 이런 것도 나눠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우리나라의 나눔 문화에도 이처럼 물질만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가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Tocqueville Society)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지난 1984년 20명의 자발적인 기부자들로 시작된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현재 매년 1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2만7천여 명의 미국인이 참여하고 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100만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기부자도 5백여 명에 달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시 드 토크빌의 이름을 붙여 만든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이름의 유래처럼 물질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를 정신적으로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고액 기부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회원들끼리의 교류도 활성화한다. 나눔에 물질뿐 아니라 정신적 가치•철학을 부여하는 셈이다. 아너 소사이어티 등 우리나라의 나눔 관련 단체도 단순히 ‘기부 많이 한 부자’들의 모임이 아닌 나눔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상징적 아이콘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눔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하와이의 어느 골프장은 봉사 경력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중 한 명도 봉사 활동 경력이 없어 입장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 고액 기부자 우대 등 다양한 제도 지원을 통해 나눔 문화를 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권에 ‘복지’ 바람이 불었는데, 진정한 복지 국가는 구성원들이 받기만 하는 국가가 아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누는 것도 선진 복지 국가의 특성 중 하나다.

나눔을 권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2년 전 한 자동차회사가 광고를 통해 소외계층에 자동차를 증정하는 캠페인을 펼친 적이 있다. 응원의 댓글을 달면 사연의 주인공에게 자동차를 주는 캠페인이었는데 한 달 동안 46만명이 해당 광고사이트를 방문했다고 한다.

나를 알리기 위해 다른 이를 낮추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태에서, 나눔 문화도 확산하고 기업의 이미지도 제고한 좋은 예였다. 이런 식으로 창의적으로 나눔 문화에 불을 지피는 역할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학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와 자주 마주치곤 한다. 상담을 맡아 종종 이 아이들이 봉사활동 같은 ‘나눔’ 활동에 참여토록 한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깨어진 마음과 상처받은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살아갈 힘을 회복한다. 나눔의 혜택은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오죽 좋으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