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이타(利他)를 꿈꾸며
[淸河칼럼] 이타(利他)를 꿈꾸며
  • 박완규
  • 승인 2012.08.23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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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서점에 들렀다 제목에 끌려 책 한 권을 샀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Why Life Speeds Up As You Get Olderː김승욱 옮김) 외람되게도 꼭 필자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저자 다우베 드라이스마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네덜란드 그로닝겐대학의 심리학사 교수라는 직함만 믿고 여름 끝자락의 파한(破閑) 거리로 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가 읊은 많은 이야기 가운데에서 기억에 관한 진술과 묘사가 특히 흥미로웠다. 우리의 명령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 노는 기억을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에 비유한 대목이 재미있다.

기억은 또 수수께끼 같은 자기만의 법칙을 따른다고 했다. 경관이 수첩에 기록된 범죄자를 가려내듯, 하필이면 괴롭고 수치스러운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하는 수가 많다. 노인의 어린 시절을 마흔 살 때보다 더 선명히 기억하게 만드는 역순의 요술을 부리기도 한다.

거꾸로 오늘의 이 순간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몇 달이 못 가, 아니 겨우 이틀만 지나도 사람들은 그 순간의 색깔, 냄새, 향기를 자신이 원했던 만큼 생생히 기억하기 어렵다.

기억이 쏘삭거리는 이런저런 심술이 싫어 아예 망각을 작정한들 소용없다. 그럴수록 잠 안 오는 밤의 머리맡에 나타나, 엉뚱한 수작을 부린다. 책은 그렇게 흐른 세월의 빠른 뜻을 매우 감각적으로, 때로는 조금 현학적으로 풀어 나간다.

잠시 읽기를 중단하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 층은 반대로 시간이 더디 간다고 느낄까. 아닐 것이다. 그들 손 안의 DMB가 마침내 거실의 ‘풍만한(?) TV'를 밀어낼 기세로 변화 양상이 드센 속에서, 시간의 빠름과 느림을 따질 여유조차 없을지 모른다. 온몸의 ‘줄기세포’를 긴장되게 세워 눈코 뜰 새 없이 일상을 산다고 대답할 공산이 크다.

한데 그처럼 변모한 TV의 드라마가 좀 수상하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나 할까. 적어도 근자에 경험한 징후는. 빨리 흐르는 시간이나 풍물의 진전 격변과 걸맞지 않았다. 오히려 옛날을 불러다가 논 회고조 분위기가 물씬거렸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 악착을 떤 여성 캐릭터의 재등장에 드라마 시청자들이 새삼 환호한 것이다. 금순이 삼순이에 이어 양국화니 나팔자라는 이름이 지시하는 이야기의 신파적 진부성을 역으로 즐긴 셈이다. 사람들은 그 정도로 감동에 목말라 있었다. 때문에 옛 정서의 고의적 복원을 노린 ‘따뜻한 가정 코드’에 박수를 보냈다.

깔끔한 여자, 세련된 남자에 물렸는가. 투박한 옷에 텁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의 독립적 개성을 더 사는 풍조가 동시에 싹 트고 있다 한다.

참으로 빠르고 이악스런 변화에 지친 까닭에 지금은 물론 엊그제 기억을 접고 앞을 겨냥해야할 시간이다. 세울 계획이 없으면 없는 대로 깊이 요량하는 폼이라도 잡고 앉아야할 연말이므로 일단 지난 화제를 되짚을 겨를이 없다.

더구나 엉뚱한 사례를 과대 포장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언제는 무 자르듯 일일이 똑떨어지던가. 달력과 상관없이 그만한 추세에 반영된 현대인의 상심을 읽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요컨대 엊그제의 감정 이월(移越)이 아직 그대로인 탓이다. 변화에 열심히 따라는 가되, 마땅한 휴식처를 두리번거리며 위안을 찾는 눈초리에 피로가 어른댄다. 그런 심정의 밑바닥에는 또 내가 무얼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자신이 숨어있으리라.

그와같은 내력에서 결국은 가족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빠르고 이악스런 변화에 지친 까닭에, 단순한 직정(直情)에 한층 끌리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 제일주의가 지닌 역기능을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저마다 벽을 높이 쌓는 동안에 생기기 마련인 이기적 행태를 우려해야겠으나 그것도 생각 나름이다. 평균 가족 수가 셋으로 졸아든 사회의 상대적 가정평화 증진을 기대하지 말란 법 없기 때문이다.

그걸 기반으로 이타(利他)를 꿈꾸며, 더러더러 아무 곳에나 드러눕는 개 팔자를 흉내낸들 어떠리. 마침 여름의 끝자락이겠다, 그처럼 수더분한 시간들을 탐내 나쁠 것이 없겠다. 불혹의 세대가 아직도 아이 취급 당하는 늙어빠진 태권도 사회의 이기적 배타성이 그러할 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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