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사
가을의 전령사
  • 박완규
  • 승인 2012.09.01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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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와 백로를 기다렸다는 듯,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바람이 가을임을 느끼게 한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느라고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기도 하고, 저녁이면 창문을 열고 귀뚜라미 소리를 기다려 본다. 계절이 주는 여유다.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己秋聲(연못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뜰 앞의 오동잎에서는 벌써 가을의 소리가 들린다)이라는 주문공(朱文公)의 시구가 떠오른다.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떠나 보내면서 우리에게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귀뚜라미 소리로, 가을밤 그 울음소리는 유난히 잘 들린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지표의 온도가 떨어져 풀벌레들의 소리도 그만큼 위로 퍼지지 않기 때문일게다.

들에서 암컷을 부르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역시 가을의 상징이다.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귀뚜라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로도 지칭된다. 화씨(華氏)온도를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다.

화씨 온도는 1720년대 독일의 파렌하이트라는 사람이 쓰기 시작한 온도 눈금으로 어는 점인 섭씨 0도가 화씨로는 32도다. 중국 사람들이 파렌하이트를 '화륜해'로 불러 화씨가 됐다.

시계도 없고 달력도 구하기 어렵던 옛 시절,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며 세월을 짐작했듯이 기온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즉, 귀뚜라미가 15초간 몇 번 소리를 내는지 헤아린 뒤 거기에 37을 더하면 화씨 기온이 나온다고 한다.

쌀쌀해질수록 조용해지는 가을 풀벌레들의 속성을 계량화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다. 또 '귀뚜라미가 들녘에서 울면 7월, 마당에서 울면 8월, 마루 밑에서 울면 9월, 방에 들어와 울면 10월이다'란 옛말도 있는데 귀뚜라미는 달력 구실도 했던 모양이다. 고려때와 중국 송나라때는 애완용으로 길렀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기도 하다.

'귀뚜리 저 귀뚜리, 가련하다 저 귀뚜리 /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절절히 슬픈 소리, 제 혼자 울어예어, 紗窓(사창) 여윈 잠을 살뜰히도 깨우누나 /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無人洞房에 내 뜻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는 작자미상의 작품도 전해온다. 님은 떠나고 홀로 텅빈 방을 지키는 아낙네와 외로움을 함께 했다는 얘기다.

일찍이 장자(壯者)는 '네 계절은 삶의 일생과 같아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라고 설파했다. 폴란드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시인은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다'라고 읊었다.

계절은 태양과 달의 궤도가 보여주는 네 국면으로 구성되며, 그런 국면은 흔히 인간의 삶이 보여주는 네 단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계절이 인생의 국면을 상징하지만, 겨울을 유독 '계모'로 보는 폴란드의 정서는 특이한데 겨울이 혹독하게 춥고 지루하기 때문일까.

문득 귀뚜라미 소리엔 우리의 전통 가옥의 창문이 제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선을 다양하게 교차시켜 문양의 조화를 갖춘 나무 오리의 창살과, 은근하고 따뜻한 창호지의 창문이 그것이다.

바람과 소리와 빛이 이치를 따라 들고나는 그런 창문은 자연과 맥을 같이 하는 자연귀속의 사상이 배어 있어 신비하기까지 하지만 그런 창문과는 결별한지 오래다. 시멘트벽, 그리고 차가운 쇠창틀과 유리의 반자연적 창문에 갇혀 살고 있다.

전통 창문은 어쩌다가 남아 있는 시골의 실그러진 고가나 민속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귀한 것이 되었다. 이 참에 가족들과 고가를 돌아보며 순리라는 자연의 이치를 음미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귀뚜라미 울어예는 이 가을에 한마당이니, 포럼이니 코리아오픈이니, 태권도 단체들의 가을잔치가 여기 저기서 걸판지게 벌어지고 있지만, 실속도 명분도 없이 예산만 낭비하며 그저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터져나오는 등 대지르듯 달려드는 지탄의 소리들은 제발 떨쳐내고 싶다.

태권도계의 화급한 과제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이렇다할 대안도 없이,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부화뇌동하는 제도권 임직원들, 허울뿐인 도장활성화가 가져다 준 일선 도장의 찌든 한숨의 원인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지렁이, 메뚜기와 함께 가축으로 인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귀뚜라미, 그 가을의 전령사가 전하는 메시지를 잘 음미해볼 일이다.

또 이 가을은 혹독한 '계모'의 계절을 잉태했음도 염두에 두고,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와 같이 넉넉한 마음 속에 차분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 태권도사회가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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