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태권도는 나에게 축복이자 보물이었다!
[기고]태권도는 나에게 축복이자 보물이었다!
  • 니콜라
  • 승인 2012.09.0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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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태권도는 나에게 축복이자 보물이었다!

 
미국서 44년 동안 태권도를 지도하면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0년대 초반이었다. 나의 도장은 휴스턴 도심지역 Clay 와 Jackson St. 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키론 도시의 중심지란 번화하고 좋은 상가 지역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반대로 쇠퇴돼 빈민 타운으로 전락된 곳도 많이 있다.

그런 곳에서 자본도 없고 빈손으로 도장을 하려니 막막한 지경이었는데, 어느 학생의 소개로 허름한 건물을 무료로 사용하라는 제의를 받고 대강 수리를 하고 열악한 상태에서 도장을 열었다.(1968년 1월)

지역이 험한 곳이라 많은 백인들은 찾아오길 겁을 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노동자들, 중하류 히스패닉 사람들이 대부분 모이기 시작하여 더운 여름철에도 냉방기도 없이 커다란 공장용 선풍기를 돌리면서 수련을 했는데 불평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 다행이었다.

한참 월남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미국서 있을 당시, 많은 젊은이들은 히피족 모양으로 긴 머리를 산발하고, 맨발로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은 시절이었는데, 키가 크고 18~19세정도 되는 어느 한 백인 히피 청년이 등록을 했다. 그는 당시에 고교를 중퇴하고 Hughes Tool 회사에서 쇠를 깎는 일군으로 일하고 있었고, 6시 퇴근 하자마자 도장으로 직행했다. 그러다보니 온몸에서 땀 냄새가 풍기는데다 맨발로 다니니 발은 더럽고 고린내까지 더했다.

이러한 학생들이 많았다. ‘신을 신고 다닐 것’, ‘샤워를 하고 올 것’, ‘벌거벗고 도장에 들어오지 말 것’ 등등 매일처럼 학생들에게 좋은 얘기로 요구했으나 별로 반응을 보질 않은지라, 나는 강도 높여 꾸지람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질 못하였다. 이러한 상태로 초창기에 이곳 다운타운에서 30여년을 운영하였다. 그간 여러 곳에 지관도 열고 변두리에 도장도 지었다. 대학교에서도 태권도를 지도했다.

Rice대학교와 Univ. of Houston, St. Thomas Univ. 등에서 1주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주말에는 다른 도시에서의 대회, 행사 등 참여 하느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35년을 그렇게 보냈다. 최근 9년간에는 많이 정돈을 하여 나름의 시간적 여유를 내어왔다.

44년 전에는 외국인들에게 나의 태권도 지식을 나누기위해 외국에 나갔지만, 현재는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서 수련 지도한 경험을 담은 ‘자연류 지도법’을 나의 모국인들과 나누기위해 부산에 와 있다.

나는 나의 제자들이 장차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되도록 많은 정신교육을 태권도와 함께 지도해 왔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자연류 지도법’을 창안한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의 꿈이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무예의 원리에 따른 수련을 강조해 왔다. 수련을 통해 지혜, 적극적 사고방식을 기르도록 했고, 과학적 수련방법으로 건강장수법 등을 지도했다. 아울러 학생들에게 수련을 통해 얻은 파워를 그들의 꿈이 무엇이든지 그 꿈을 달성하는데 사용하라고 지도했다.

‘쇠깎기’ Don Martin은 도장 동료 여학생과 결혼을 했다. 두 학생 다 무일푼인 듯하였다. 교회 마당에서 초라하게 결혼을 하였다. 나는 나의 처와 함께 그들이 부모도 없이 하는 결혼식에 참석했다.

Don은 그의 처 Charlotte과 빈 수레를 끌고 투산 Arizona로 떠났다. 둘 다 3단이었다. Charlotte은 투산 도시중심부의 YMCA에서 자연류 태권도 클래스를 조직하여 가르치고, Don은 조그마한 장소를 얻어 샘방(?) 쇠깎기를 시작하였다.

한 10여년이 지났을까. 나는 그들이 하는 YMCA 클래스를 방문하기로 했다. 심사도 참관했고 세미나도 했다, 나의 제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 올바른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즐거웠다. 당시 Don은 많은 노력을 하여 조그마한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주말을 잘 보내고 공항에서 작별을 하는데 Don은 내게 조그마한 흰 봉투를 내게 전한다. 자기 성의라고 한다. 나는 아마 성의로서 한 100달러정도 용돈을 주는구나 하고 봉투를 열었다. 이상하게도 0000 숫자가 너무 많아서 다시 잘 살펴보니 1만 달러($10,000.00)였다. 놀라서 뭔가 잘못 쓴 것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Don은 내게 절을 하며 “아닙니다.” 한다. 그러면서 과거 자기가 거지처럼 하고 도장엘 다니고 목욕도 않고 속을 많이 태웠는데, 쫒아내질 않고 거두어 주어서 대단히 감사 했다고 한다. 이 적은 돈 보다 더 많은 것을 자기에게 주었다며, 머리 숙여 인사를 다시 한다. 내 일생에 이런 돈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돌아와서 크게 복사를 해서 잘 간직하고 있다.

Don은 사업을 확장 하여 Mexico와 Phillipin에도 공장을 확장했다. 그 이후에도 2차례나 그러한 사례를 나와 처에게 했다.

2년 전에 Mr. Don Martin은 필리핀에 공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내가 있는 한국엘 오겠다하여 서울에서 만났다. Don은 나의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 하면서 모두 초청을 하겠다고 한다. 제일 좋은 호텔내 레스토랑으로 초대하겠단다. 나는 대학교, 고등학교, 무예 친구가 많다가 했더니 “다들 초청 하세요.” 한다.

12명을 강북 시청부근 롯데 호텔 13층 일식집으로 초대했다. 예약이 12시 30분이라 우선 모두 함께 아래층 라운지에서 대기하며 드링크, 티, 주스를 마시며 약 30분 후에 13층으로 올라갔다. Don의 요청으로 식당 측에서 통역사를 초빙하여 여성 통역사가 도착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돈을 낭비하는가? 했더니, Don은 나더러 “선생님께서 저의 말을 통역하시면 제가 면목이 없다”면서 굳이 그 여성 통역사에게 비용을 꽤 지불한 듯 했다.

테이블을 여럿 함께 정리한 후에 Don은 “여러 고매하신 저의 사범님의 친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하며 과거 자신의 히피 시절이야기와 더불어 “오늘날 성공의 비결은 모두 나의사범님의 교육의 덕입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설 후 참석자들이 각자 소개를 한다. 초대받은 모두가 72~76세 노인들이었다.

몇 자리 떨어진 곳에서 2명의 노신사분이 이쪽을 계속 주시를 하곤 한다. Don의 연설을 다 들은 후에 키가 크신 호리호리한 노신사께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Don에게 손을 내밀며 “고맙다, 참 훌륭한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내게도 악수를 청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전 국회의장을 역임하신 이만섭 선생이란다. 나는 외국서 오래 살아서 그가 누군지를 몰랐지만 대부분의 나의 친구들은 친분이 있어 악수를 한다.

우리는 다같이 호텔 라운지에서 약 1시간을 소요하며 환담 후에 헤어졌다. 친구들이 내게 좋은 교육을 외국 사람들에게 하였다고 하며 축하를 한다. 나 자신 태권도 사범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날 모임에 참석자들은 이금홍, 김일주, 안평선, 이규항, 권혁신, 안종화, 변흥선 등 1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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