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북태권도의 통일을 염원하며 900km 도보순례
[기고]남북태권도의 통일을 염원하며 900km 도보순례
  • 김신호 사범(9단)
  • 승인 2017.11.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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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호 9단
김신호 9단

지난 6월. 북한태권도선수단이 남한을 방문하여 각처에서 시범을 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 8월25일 국기원태권도연구소(소장:이봉)에서는 <태권도 남북의 징검다리>라는 주제로 남북태권도의 교류를 위한 법제도와 문화콘텐츠 협력방안, 남북태권도의 비교, 남북태권도교류와 태권도단체의 역할 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나는 객원연구원으로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 나는 ‘남북의 통일’과 작게는 ‘태권도 통일’을 생각 해 보았다. 태권도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멀지 않은 미래에 통일을 약속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통일을 위해 태권도가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써 ‘남북태권도 통일염원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북태권도의 통일과 태권도의 미래, 그리고 태권도지도자님들의 평안을 염원하는 마음도 담아,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 을 시작하게 되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 갈라시아(galasia) 지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지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스페인어: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 )은 스페인 갈리시아 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 이다.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 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 의 유해가 매장된 곳으로 유명하다. 성당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종착점에 있으며, 유럽 중세 시대 이래 주요 순례 지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의 시작점은 여러 곳이 있지만, 순례자 대다수가 프랑스의 남부마을 ‘생장피데포르’에서 출발한다. 출발점에서 마지막 지점인 산티아고 성당까지의 거리는 800km이다. 이 길은 약 1,200년 전에 생겼다. 전 세계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고 걸어보고 싶어 하는 길이 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이다.  나는 생장피데포르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성당을 지나 땅 끝 마을인 “피니스테라”까지 900km를 걷는 여정을 시작했다.

9월15일.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9월17일 첫날부터 카미노순례(900km순례)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배낭의 양쪽에 태극기를 꽂고 30장의 태극기를 배낭 속에 준비하였다. 태극기에는 ‘남북태권도의 통일 염원!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900km ! 태권도9단 김신호’라고 자필로 썼다. 순례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에게 태극기를 선물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태극기를 걸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복을 입고 걷기로 계획 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9월은 겨울 날씨 같았다. 이른 새벽부터 걷기에는 도복은 너무나 추웠고 15kg의 배낭을 메고서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순례 길의 완주가 목표였기에 부득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순례코스 중 제일 높은 산맥인 ‘피레네 산맥’을 깜깜한 새벽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하고,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의 집’은 3일 전 떠나온 길꾼의 마음을 향수에 젖게 했다. 피레네 산맥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안개와 바람이 많고 눈이 많이 내리는 산맥이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 속옷에 땀이 배일 즈음, 태양이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산 너머에서 힘 찬 도약을 했다. 예상했지만 피레네 산맥에서 보는 태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일출의 사진을 찍고 계속해서 피레네산맥을 넘었다. 끝없는 오르막에 숨이 차고 발가락 열 개는 제각각 뒤틀렸다. 종아리 근육은 올라붙고 대퇴부 근육도 통증이 느껴졌다. 손가락은 시려서 감각이 없었다. ‘이러다 사람이 길에서 죽는구나!’하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 해 왔다. 첫 고비였다. ‘여기서 포기하면 실패 하는 거다.’는 위기를 느꼈다. 시작부터 포기할 수는 없다.’는 근성이 생겨났다.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며 몸이 회복되기를 바랐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여섯 개의 무덤을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많았다. 900km를 걷는 동안 길가의 무덤을 30~40개 정도는 본 것 같다. 죽은 자들의 무덤은 작은 비석과 아담한 돌들로 꾸며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길을 걷다가 죽으면 죽은 자리에 묘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무덤 앞을 지날 때면 모두 묵념을 하거나 소장품을 두고 가기도 한다. 내가 본 한 중년여인은 손수건과 사과를 올려놓고 비석을 쓰다듬으며 오래 머물렀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피레네 산맥은 웅장했다. 아득하게 긴 사막 가운데로 난 선명한 길은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양떼들, 산등성의 그림 같은 구름들, 산 아래로 보이는 아득한 안개, 장엄하고 붉은 태양은 누구의 선물인걸까? 끝없이 생각하며 걸었다. 헤밍웨이가 이곳에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는 “수비리마을”의 고풍스런 아치형 돌다리를 지나 용사의 언덕이라는 “페르돈 언덕”을 힘겹게 올랐다. 매서운 추위와 스미는 바람 때문에 2~3분도 머물기 힘들었다. “여왕의 다리”를 지나 “아르코스”로 가는 길에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순례자들에겐 생명수 같았다. “산토도밍고”에서는 바로크식 성당을 볼 수 있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너무나 웅장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메세타”평원을 지나 무너져 내린 “템플기사단 성”을 만났다. “사하군”을 지나니 그림 같은 풍경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레온”에 들어서니 거대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레온지역에 살던 조상들의 원주민 시대의 삶을 재현 하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소달구지에 꾸민 주택이 넓은 광장에 차례로 들어섰다. 레온시의 거리는 소와 말의 냄새로 가득했다. 가우디가 설계 했다는 레온성당 옆 은행건물은 신비하여 넋을 놓고 구경했다. “비에르쏘”로 향하는 길은 포도밭 평야가 넓게 펼쳐졌다. 양치기 할아버지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포르토마린”에 들어서면 도시 아래로 흘러가는 강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여기서 부터는 말을 탄 경찰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성당까지 100여 km남아서 사리아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사리아에서 걷거나 자전거나 말을 타고 산티아고 성당까지 오면 ‘순례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수아”는 “뿔뽀”라고 하는 문어요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맛보기도 했다.

순례길 여정 중에 미국인 “Paul”과 스코틀랜드인 “LINOSAT McKAT”이 나의 숙소에 찾아왔다. 폴은 비행기조종사였는데 은퇴 후 태권도에 심취해 있었다. 1942년생인 폴은 올해에 태권도 1단(단번:1단05563088)을 딴 친구였다. 대회에서 송판 두 장을 손끝으로 격파하는 자신의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며 감격해 했다. 폴은 나의 단증, 1급 사범자격증, 심사위원증 등을 보고 나서는 “태권마스터!”하며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였다. 나는 폴을 안아 주며 ‘당신은 진정한 태권도인 이다. 72세의 나이에 태권도 1단을 땄으니 대단하다. 축하’한다. 고 얘기했다. 주변에서 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보던 사람들에게도 폴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폴은 박수를 받았다. 폴이 태극8장과 고려 품새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30~40분 정도 같이 태권도를 하였다. 숙소에서 별난 만남을 하는 우리를 지켜봤던 숙소의 주인은 나의 저녁식사비 12유로와 숙비10유로를 돌려주면서 “오늘 숙식비는 선물”이라고 하며 웃었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이 하나 쌓였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스페인정부에서 유료로 발행하는 순례자여권(필그림 패스포드)을 지참한다. 매 구간마다 스탬프를 찍어 골인 지점인 산티아고 성당 사무실에서 확인 인증을 받아야 공식적으로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은 ‘순례자’가 된다. 순례 길을 완전하게 걸어온 사람들은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순례자증명서”와 몇km를 걸어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km증”을 받을 수 있다. 스템프 인증도 나름 까다로워서 확인인증을 받으려면 스탬프가 구간마다 2개 이상은 찍혀 있어야한다. 스탬프가 구간마다 찍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중간에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서 일명 점프를 한 것으로 간주해서, km증을 받을 수 없고 순례자증명서만 받게 된다. 복잡한 절차임에도 모두가 순례자증명서와 km증을 받기 위해 100m가 넘는 줄을 서서 3시간 가까이 걸려 인증을 받는다. 이런 광경은 종일 계속된다.

한국에서는 추석연휴가 10일이나 계속 되던 그때, 나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하루에 30~40km를 8~9시간씩 걸었다. 10월3일 뜨거운 태양아래 지쳐 무의식적으로 걸음만 옮기던 길 위에서 ‘김운용 전 총재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엄운규 원장님께서 서거’ 하셨는데 이렇게 세월 따라 태권도의 전설들께서도 가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하루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일에 지치거나, 사람에게 상처 받아 치유의
목적으로 오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구상하거나, 무엇을 간절하게 소망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인다. 그래서 모두가 묵묵히 길을 걷는다. 순례자들은 아플 때 약을 나눠주고, 목마를 때 물을 나누고, 배고플 때 빵을 나눈다. 지친 다리를 사심 없이 주물러 주고, 냄새나는 발바닥의 물집을 따주고, 무거운 배낭의 짐도 나누어 짊어진다. 같이 울어주고 위로하는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연히 ‘나도 그 누군가에게 끝까지 친절 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스도의 3대 성지라 불리는 산티아고 대성당 골인지점에 들어서니, 모두가 감동에 휩싸였다. 감격에 못 이겨 엉엉 우는 사람, 배낭을 내동댕이치는 사람, 서로 부둥켜안는 사람, 신발과 모자를 하늘로 던지면 함성을 지르는 사람, 광장에 드러누워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천년의 돌기둥에 기대어 서서 나도 함께 울었다. 길고 긴 순례길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나 자신이었다.  인내하며 걸어온 길 끝에, 내가 있었다. 천 이백 년의 세월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배낭에 달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온 이곳에, 드디어 나도 왔다. 순례길 900km를 30일 만에 완주했다. 성취감과 함께 밀려드는 허무함도 함께 느끼며 산티아고의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만 가는 길이 아니다. 1,200년 전부터 세계인이 동경해온 길이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이들에게 안식이 되는 길, 내려놓음과 얻음을 함께 발견하는 길, 삶의 질문들에 정직하고 용감하게 답하고자 스스로 길을 찾아온 이들을 위한 길이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찾아오는 순례길이다. 900KM를 걷는 모든 순간에 비겁과 오해가 존재하지 않아 내겐 더욱 매력적이었다. “희망은 항상 길 끝에서 반짝거린다.”는 시구(詩句)처럼, 언제가 될지 모를 통일은 분명히 ‘우리가 가는 길 끝 어딘가에서 반짝거릴 것’을, 끝없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찾고 찾으면 이루어질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 반짝거리는 희망의 길은 “태권도인 모두의 의지와 염원을 담은 것이길 소망”한다. 나 역시 그 반짝거림을 잡으러 ‘나는 내 삶의 장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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