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1987) 섣달 그믐날
#좋은아침(1987) 섣달 그믐날
  • 박완규
  • 승인 2018.02.1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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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섣달 그믐날 밤엔 온 집안 곳곳에
불 밝힌 체, 옹기종기 모인 식구들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묵은 해 마지막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새롭게 밝아오는 새 해 첫날 아침을 경건히
맞이하는 마음으로 '수세(守歲)'라 했지요.

가고 오는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눈 부릅떠 지켜보는 선인들의 치열한
시대정신을 엿보게 하는 풍속입니다.

설날 아침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설빔으로
단장하고 차례상 앞에 서면 진설한 제수들이
눈앞을 환하게 해 군침을 꿀꺽 삼켰지요.

집안 어른들과 일가친척 이웃 어른들 찾아
세배 올리고나면 주머니가 붕긋할 만큼
세뱃돈이 모여 마음이 넉넉해지던 시절,
연날리기 팽이치기 썰매타기로 짧은 하루가
후딱 지나갔습니다.

설 저녁 야광귀에게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운수가 불길하다고,
설빔으로 얻은 새 신발을 방안에 감추거나
품에 안고 자기도 했지요.

체를 마루에 걸어 홀리면 신발 훔치러왔던
야광귀가 체 구멍을 세느라 정신을 뺏겨
신발 훔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첫닭 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대로
도망친다고 했던가요.

먼데서 온 친척 어른들이 덕담으로 던져주는
칭찬도 좋았지만 “시집가라, 장가 왜 안가냐?”는
말은 참 듣기 싫어했던 형과 누나의
찡그린 표정도 떠올려집니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집안과 마을의
축제 분위기도 고향을 고향답게 했으니,
상자일(上子日) 쥐불놀이 상묘일(上卯日) 명사감기
상진일(上辰日) 용알뜨기 열나흗날 더위팔기
보름날 부럼깨기….
풍성하고 즐거운 행사로 정월은
환희와 축복의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해도 너무 변해
이런 명절 세시풍속이 지금은 스러져 없어져가니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입니다.

예전의 설 풍경은 아닐지언정
잠깐이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설날,
가족의 참의미를 일깨우고, 설 세시풍속을 추억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목식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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