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형 큰사범, "호주 1호 파견돼 50년 태권도 외길인생"
노계형 큰사범, "호주 1호 파견돼 50년 태권도 외길인생"
  • 윤영심 특파원
  • 승인 2018.03.22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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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윤영심 특파원]  '한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K-POP 일테지만, 사실 한류의 원조는 '태권도'이다. 50여 년 전 태권도 불모지 호주로 정착한 27살 청년이 여든의 나이에도 태권도 전파에 힘을 쏟고 있다. 노계형 큰사범이 그 주인공. 본지 윤영심 특파원이 그를 만났다.

호주 멜버른의 베이스워터 사우스 초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믿기 힘든 한국말이 쏟아져 나온다. 

“차렷, 경례” “발차기 준비” “어이~얍”

어린 학생들이 우리말 구령에 맞춰 동작을 익히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여는 노계형 사범의 태권도 교실이 열기로 가득하다. 2선으로 물러났지만 여든 나이에도 태권도 사랑은 여전하다.

노계형 큰사범은 “(한국에서) 교편생활을 2년 했거든요. 2년 동안에 태권도가 외국에서 붐이 일어나서 교편생활을 그만두고 그다음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죠.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때는 태권도와 유도를 보급해야 하니까 영어도 같이 준비를 늘 하고 있었죠.“라고 말한다.

노계형 큰사범이 호주에서 태권도 전파에 나선 것은 반세기 전이다. 1965년 호주 유도 협회에서는 유도와 태권도를 함께 지도할 수 있는 사범을 한국에 요청했고 당시 유도 4단, 태권도 3단이었던 노 사범이 호주 파견 대상자로 선발됐다.

태권도 불모지였던 호주에 품새를 전수하는 그의 노력과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여든 살의 노계형 사범은 오늘도 어린이들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며 호주에 태권도 정신을 알리고 있다.

노계형 큰사범의 태권도 교실에 등록한 제자들은 지금까지 7천여 명이 넘는다. 호주 국가대표 선수들을 이끌고 많은 국제 대회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은퇴 후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호주 어린이들에게 태권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태권도 수련생인 리비아메지 어린이는 “저는 (태권도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운동이라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노계형 큰사범 밑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이비드 맥게리티 사범은 “저는 그를 1975년에 만났습니다. 그는 친구이자 훌륭한 사람이고 태권도 사범입니다.”라며 경외심을 드러냈다.

1972년 호주 태권도 협회를 창설한 노계형 큰사범은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데도 큰 힘이 됐다. 주최국의 강한 요구가 있어야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기원에서 수여한 자랑스러운 태권도 상은 노사범의 가장 큰 자랑이다.

노계형 큰사범은 “옛날에는 선수를 기르고, 선수 데리고 외국에 시합을 다니고 이랬는데 그때는 사실 그런 재미를 못 느꼈는데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발달하는 걸 보는 데 굉장히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도장에 서겠다는 노계형 큰사범. 오늘도 우렁찬 함성으로 태권 한류 전파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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