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표 사범 "태권도로 스웨덴이 한국을 사랑하게 만들었죠."
임지표 사범 "태권도로 스웨덴이 한국을 사랑하게 만들었죠."
  • 박정우 기자
  • 승인 2018.04.2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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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웨덴 한인회장이면서 스웨덴 최대 태권도장인 '무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임지표 회장.
재스웨덴 한인회장이면서 스웨덴 최대 태권도장인 '무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임지표 회장.

 

“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다르죠. 나는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이 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한국을 알고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요. 태권도는 그런 점에 있어서 가장 좋은 ‘도구’죠. 스웨덴 사람들이 태권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국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니까요.”

현재 재스웨덴 한인회(Koreanska Förening)를 대표하고 있는 임지표 회장(48)은, 스웨덴 사회에서 ‘태권도 전도사’로 더 유명하다. 그는 스웨덴에서 유명한 태권도 마스터 중 한 사람이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장 정직한 한국을 알리는 메신저다. 한국 고유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 뿐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에게 그 고유한 한국의 정신을 알게 하는 것, 그게 임지표 회장이 지금 스웨덴 사회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현재 스웨덴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인구는 대략 연간 1만 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 중 임 회장이 운영하는 ‘무도 아카데미(Mudo Academy)’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수련생은 약 1400명 정도다. 거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임지표 회장이 ‘스웨덴의 태권도 전도사’인 이유다.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지역 살트회부(Saltsjö-boo)에 위치한 무도 아카데미. 900 평방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공간은 늘 태권도를 수련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숨소리로 뜨겁다. 이제 서너 살 밖에 안된 유아에서부터 은퇴 후 건강을 다지는 노인들까지 수련생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 수련생의 95%는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이 드넓은 도장에서 한국말로 태권도를 외치고 있다.

스웨덴 이민 초기인 7살 때 소년 임지표. 어린 시절 그에게 태권도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기댈 수 있는 기둥이었다.
스웨덴 이민 초기인 7살 때 소년 임지표. 어린 시절 그에게 태권도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기댈 수 있는 기둥이었다.

“태권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자는 생각을 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의 수련을 위한 태권도를 했을 뿐이었죠. 그러다가 1997, 8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권도를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아버지 밑에서 사범으로 4년 정도 사람들을 가르치다가 1999년에 아버지에게서 독립해 나만의 도장을 마련했죠. 그게 무도 아카데미의 시작입니다.” 

임 회장이 스웨덴에 온 것은 1976년이다. 그의 부친인 임원섭 선생이 스웨덴에 태권도를 제대로 보급하기 위해 1975년 먼저 스웨덴에 왔고, 1년 후 가족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이다.

임원섭 선생은 태권도 공인 9단, 그랜드 마스터다. 스웨덴 뿐 아니라 북유럽에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한 개척자다. 임원섭 선생 이전에 스웨덴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던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웨덴에서의 태권도 교육을 유지 시키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1975년 임원섭 씨가 와서 본격적으로 스웨덴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임 회장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스웨덴에 살게 됐다. 그리고 그가 태권도를 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스웨덴에 오자마자 시작한 태권도는 한참동안 낯선 스웨덴에서 그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또 든든한 기둥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권도 마스터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자기 혼자만의 수련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스웨덴에서 태권도는 낯선 무술이었다. 차라리 일본의 가라데(공수도)에 익숙한 것이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가라데와 전혀 다른 무술인 태권도의 보급을 위해 임원섭 선생이 고군분투했지만 쉽지 않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 조금씩 알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하계 올림픽에 관심이 적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금세 퍼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스웨덴 사람들이 태권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임 회장 집안은 3대째 태권도 가족이다. 지난 2012년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에 3대가 태권도를 하는 가족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지표 회장, 부친인 임원섭 그랜드 마스터, 동생 임통일 씨, 큰 딸 임요한나, 작은 딸 임빅투리아)
임 회장 집안은 3대째 태권도 가족이다. 지난 2012년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에 3대가 태권도를 하는 가족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지표 회장, 부친인 임원섭 그랜드 마스터, 동생 임통일 씨, 큰 딸 임요한나, 작은 딸 임빅투리아)

한 해 평균 1만 5000명이 수련하는 태권도지만 임 회장은 태권도의 위기를 이야기 한다. 현재 국제 스포츠계에서 태권도는 그 위상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다.

“매회 올림픽 때마다 태권도 정식 종목 문제를 놓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어이없게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죠. 이런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세계태권도연맹 차원에서의 변화는 소극적입니다. 게다가 2020년 도쿄 올림픽 때 가라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죠. IOC는 또 다시 고민에 빠질 겁니다.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태권도와 가라데 둘 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계속 유지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한 회의감이죠. 태권도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태권도는 “매우 멋진 무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들 중 태권도가 한국의 무술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태권도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은 비로소 한국을 알아간다. 태권도에서 쓰는 공식 용어 때문에 한국말을 알아가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도 된다. 결국 태권도는 그 존재만으로도 스웨덴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것이 임 회장이 태권도를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7살에 스웨덴으로 이민 온 임지표 회장은 자라는 과정에서 거의 한국말을 잊었다. 어린 시절 그의 주변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뿐이었다. 한국에서 함께 왔지만, 여동생은 자신보다 더 어렸고, 남동생은 스웨덴에 오고 한참 뒤에 태어났다. 학교에서 한국 친구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집에서 부모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한국말을 기억하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 성장한 후 그는 갑자기 한국말을 다시 배우고 싶었다. 스웨덴에서 군 생활을 마친 후 그는 홀연히 서울로 향한다. 고려대학교에서 그는 한국어 연수를 받는다. 그의 입에서 다시 한국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다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운다.  

임 회장이 운영하는 '무도 아카데미'는 지난 해 12월 스웨덴 태권도 참피언쉽에서 10개의 금메달과 7개의 은메달, 그리고 5개의 동메달을 따 우승했다.
임 회장이 운영하는 '무도 아카데미'는 지난 해 12월 스웨덴 태권도 참피언쉽에서 10개의 금메달과 7개의 은메달, 그리고 5개의 동메달을 따 우승했다.

“12, 3살 때 거울을 보면서 파란 눈에 금발이 아닌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부모님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데, 그리고 거울 속의 나는 스웨덴 사람이 아닌데, 나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죠. 그러다가 몇 년이 더 지난 후 고려대에서 제대로 한국말을 처음 배우면서 ‘아, 나도 한국 사람이 맞구나’ 하는 어떤 절실함이 생겼죠.”

그는 그렇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게다가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권도 마스터가 되면서 그는 보다 명확한 한국 사람이 된 셈이다. 

그가 3100여명의 재스웨덴 한국인 교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인회장이 된 것은 2015년이다. 역대 한인 회장 중 최연소다. 2017년 재선돼 두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다. 그런데 재스웨덴 한인회는 한국인 교민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공식적인 회원 수도 300명 남짓이다. 전체 교민 수의 10% 수준이다. 그런데 그는 이 한인회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얼까?

“한인회장이 된 후 제 목표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 교민 뿐 아니라 거의 4배에 이르는 한국인 입양인들, 그리고 한국인과 가족을 이룬, 또 한국에 관심을 갖는 스웨덴 사람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 조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민들에게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입양인들에게는 한국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며, 한국을 아는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를 알게 해주는 중심체로서의 한인회를 만들고 싶었죠.”

그러면 4년째 한인회장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을까?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거대한 목표도 아닌데,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던 듯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인들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닮아가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인회라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들이 다른 듯하다.  

임 회장의 두 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뛰어난 태권도인으로 성장했다.
임 회장의 두 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뛰어난 태권도인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재스웨덴 한인회가 입양인들을 품은 것은 큰 성과다. 이제까지 스웨덴 뿐 아니라 한국 입양인이 많은 노르웨이나 덴마크,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에서도 입양인이 그 나라의 한인회에 포함된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재스웨덴 한인회에는 한국 입양인이 당당히 임원을 맡고 있다. 스웨덴 한국인 입양인 협회와 한인회가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입양인을 향한 임지표 회장의 부단한 관심의 결과물임은 사실이다.

임 회장이 한인회장을 맡는 것은 올해 말까지다. 그는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싶다. 그런데 한인회장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그가 계속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하다. 태권도다. 스웨덴에서 보다 깊게 뿌리를 내리면 태권도가 스웨덴 속에 한국의 정신을 올곧게 자리매김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아버지가 묘목을 심은 태권도를 물주고, 비료주고, 밤낮으로 돌보다보면 내 뒤에는 큰 거목으로 자라겠죠. 그러면 스웨덴 속의 한국은 세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멋진, 그리고 의미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나는 태권도가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믿으니까요.”

오늘도 스톡홀름 멜라렌 호수 위로 임지표 회장과 그 수련생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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