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중국 중추절(仲秋節)이 어찌 한가위 같으랴마는
[발행인칼럼] 중국 중추절(仲秋節)이 어찌 한가위 같으랴마는
  • 이기백
  • 승인 2019.09.1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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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
아직은 텅 빈 도장 한 켠에 앉아 은은한 보이차 한 잔을 홀짝이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어느 순간 내 어릴 적 추석풍경을 떠올리노라니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추석 전날이면 송편에 소고기 산적, 명태전, 파전까지 평소 꿈도 꾸지 못할 음식들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어린 우리들을 몸살나게 하곤 했다. 동네 마을 공터에선 어른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곤 으라차차 기합을 넣는 씨름 대회도 열렸다.

어머니는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러 시장에 가시는 길에 꼭 검정고무신 한 켤레나 빨갛고 노란 옷가지를 챙겨 오셨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행여 이것들이 달아날까봐 마음 졸여 한밤중에도 몇차례씩 눈을 뜨고 확인하곤 했고 그래도 안심이 안돼 가슴에 품고서야 잠들었다.

그때쯤이면 서울로 돈 벌러 떠난 동네 형이나 누나들이 선물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신작로 한편의 늙어 가지가 축 늘어진 소나무나 느티나무 밑으로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어린 우리들에겐 빨간 넥타이에 검은 양복을 입거나 두꺼운 모직으로 만든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형들이나 누나들은 최고였다. 이들로부터 처음 듣는 서울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러운 추억이지만.

한가윗날이 되면 평소 못 먹어본 음식을 양껏 먹어 불룩해진 배를 내밀고 의기양양하게 고샅을 돌아다니곤 했다. 한꺼번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 설사를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한편으론 형편이 어려워 차례 상 차리기조차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음식을 장만한 집들이 십시일반으로 전이며 나물이며 보내줬었다.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추석에 대한 회상은 60~70년대 영화의 흑백필름처럼 비가 내리면서도 언제나 수채화처럼 담백하고 정겹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추수가 끝난 뒤 신라 6부의 처녀들이 길쌈을 하는 내기를 하며 음식대접을 한 것이 추석의 유래라고 적혀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에는 한가위 풍속은 가락국에서 시작됐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빚어 이웃과 함께 나눠먹고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돼 있다.

2천년 넘게 이어온 풍습이고, 50년이 넘도록 언제나 설레던 추석이지만 이젠 기억 속에서 자꾸 희미해지는 느낌은 단지 나이 탓만은 아니지 싶다. 필생의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4년째 광저우에 머무르느라 체감하지 못했던 시간까지, 내게 추석에 대한 회상은 이곳 중국의 중추절(仲秋節) 풍경 속에서 그나마 비슷한 질감의 향수와 위로를 얻고 있음에야.

그런데 한국 내에서 들려오는 한가위 소식은 위안은커녕 추억 속의 넉넉한 풍경까지 한줌 재로 날려버렸다. 태권도 지도자의 삶을 물리고 귀농생활로 말년의 안식을 찾으려던 친구에게 잇단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가 무척 쓰라린 까닭이다. 초보 농사꾼 3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제야 성공이라 말할 만큼 올 작황이 좋다고 전화로 설레발치던 게 불과 보름 전 일인데, 날벼락을 맞은듯한 그 심정은 오죽할까.

태풍이 앗아간 게 어디 풍요로운 추석뿐이랴. 귀농으로 찾으려던 소담한 안식의 꿈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단 한 번 수확의 기쁨조차 누리지 못한 채 망연자실 처연한 심경일 텐데, 그래도 추석 차례를 지내겠다고 음식 몇 가지 소박히 올려놓고 재배 드렸을 친구일가의 모습을 상상하니 짓눌린 가슴에 생채기 난 듯 쓰리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맞이한 중추절이나 한국에서 쇠는 추석이 다같이 풍요와 안식을 바라는 마음일진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금, 친구의 아픔이 내 외로운 마음에 얹혀져 서글픔이 복받쳐 오르는 순간, 핸드폰 벨이 울린다. 이 친구란 작자가 "막 성묘를 다녀왔어. 넌 어때?" 라며 아무렇지 않게 내 안부를 묻는다.

그래 잠시나마 가졌던 상심은 허영이고 사치일 뿐, 심기일전(心機一轉) 하자. 친구는 지난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또 다섯번째 농사에 도전할 것이고, 나는 숙원사업이던 중국 내 태권도장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기에 개척해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우리 몸 속에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도전과 개척정신이라는 태권도 DNA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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