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커녕 90% 멸실 위기
국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커녕 90% 멸실 위기
  • 김진호 기자
  • 승인 2020.05.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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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로 찾아 들어가 직접 확인해 본 반구대 암각화

본지 취재팀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답사는 지난 6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멀리는 7000여년 전 신석기시대 때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위에 새겨진 선사시대 역사’라 불린다. 하지만 1년 중 6~7개월을 물에 잠겨 있어야 하는 ‘비운의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와 한국화가 김호석 화백, 김현원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생화학교실) 등과 함께한 취재팀은 육로가 아니라 물길을 헤쳐 암각화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 지워지고 있는 그림들

사연댐 관리사무소에서 6인승 보트를 타고 댐을 가로질러 대곡천 상류로 거슬러 오른 지 10여분, 물길 몇 굽이를 돌자 대곡천의 왼쪽에 암각화가 있는 절벽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는 전망대가 보였다. 암각화 앞에는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2평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보트에서 내리자 아직 질척거릴 정도로 미끄러웠다.

답사팀은 암각화 앞에 섰다. 암각화를 처음 본 김현원 교수가 불만을 터뜨렸다. “변 교수님, 김 화백님,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그랬다. 그 유명한 고래나 호랑이, 가면 등의 그림을 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고래잡이에 나선 선사시대 사람들이 탄 배를 그려놓은 그림도, 고래 3마리가 꿈틀거리는데 그중 한 마리는 두 줄기의 물을 내뿜는 그림도, 우리 속에 갇힌 사슴이나 씩씩한 호랑이, 바위를 쪼아 새긴 표범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닳아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300여개의 그림 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상은 겨우 20~30개에 불과했다. 1970~1980년대의 사진과 위치를 비교해 꼼꼼히 살펴봐야 겨우 형상을 알아볼 정도였다.

그림 (1) 부분 : 우리와 고래(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그림 (1) 부분 : 우리와 고래(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변 교수와 김 화백은 반구대 암각화의 상황을 복구공사가 마무리 중인 남대문(숭례문)에 빗댔다. “이 암각화를 서울에 있는 남대문과 비교하면 남대문 기둥들이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도 당국자들은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이 옳다고만 다투고 있어요.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한반도 역사의 첫 페이지, 우리 문화재의 맏형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요.”(변 교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사유체계가 집약된 그림, 한국미의 원형이 지워지는 이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김 화백). 일행들 속에서도 “말라 버린 이끼자국들 좀 봐” “물에 잠긴 띠가 허옇게 그대로 있네” 등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림 (2) 부분: 호랑이와 표범(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그림 (2) 부분: 호랑이와 표범(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김 화백이 훼손 전 사진자료들을 한 뭉치 꺼내 바위면 구석구석을 대조해나갔다. “어, 여기도 희미해졌잖아.” “이곳은 금방 지워져 없어지겠네.” 그의 탄식이 연신 이어졌다. 한국전통미술의 현대적 계승자이자 성철·법정 스님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 작가로 유명한 그는 한국미의 원형질을 탐구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찾았다. 몽골 등 세계 곳곳의 암각화가 그려진 곳을 답사하기도 한 그는 ‘한국 암각화의 도상과 조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김 화백은 “암면의 형상들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지만 아예 암각화 바위 자체가 곳곳에서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암각화 하단과 상단 곳곳에서 바위 조각들이 흔들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암질이 물에 약한 진흙 퇴적층인데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가 반복되니 훼손이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정말 보존조치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현원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훼손돼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보존조치가 이뤄지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반구대 암각화 실상을 책 저술 등 온갖 방법으로 알리고 각성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림 (3) 부분 : 가마우지(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그림 (3) 부분 : 가마우지(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 가치 높은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 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문명대 동국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조사팀이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발견 6년 전인 1965년 이미 대곡천 하류에는 울산공업단지 등에 필요한 용수공급을 위해 사연댐이 조성돼 반구대 암각화는 40여년 동안 1년 중 절반 이상을 물에 잠겨야 했다. 신석기~초기철기시대 새겨진 암각화 300여점은 선사시대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그동안 국제학술회의 등이 열리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과거 유물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에도 세계적 관광자원은 물론 각종 디자인 등으로 응용, 활용되고 있다. 암각화 인근에 2008년 설립된 울산암각화박물관에는 하루 평균 300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다각도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만들어 축제 등에 활용 중이다. 한국조폐공사는 최근 ‘한국의 문화유산 시리즈 기념 메달’ 중 ‘한국의 수렵·벽화 이야기 시리즈’의 첫번째로 반구대 암각화 기념메달을 출시했다. 프로축구 울산은 올해 시즌티켓을 디자인할 때 반구대 암각화를 기본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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