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하되 교만치 않는 게 군자임에야
태연하되 교만치 않는 게 군자임에야
  • 박완규
  • 승인 2012.09.25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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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맹지반이란 사람이 있었다. 싸움터에선 늘 앞장서서 달렸지만 퇴각할 때는 언제나 뒤처져 갔다. 달아날 때 재빨라야 목숨을 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패전군의 뒤처리를 하며 동료들을 위해 늑장을 부렸다.

맹지반은 성안에 돌아온 후에야 자기 말에 채찍을 가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뒤처지려고 한 건 아닌데 이놈의 말이 뛰어주지를 않는단 말이야.” 이러한 맹지반에 대해 공자는 “군자는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태연하지 않다.” 며 그의 용기와 겸손을 찬양하고 있다.

18년 전 호치민에 한 달여간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다. 현지 친구가 한 사람을 소개시켜주었다. 순진해 보이는 웃음이 인상적인 그 사람과 잠깐의 교제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 친구가 말하기를 나에게 소개 시켜준 친구가 호치민에서 손으로 꼽는 갑부라는 것이다.

처음 만난 그 사람은 평범한 중국 화교였으며 옷은 약간 빚 바랜 바지에 와이셔츠차림의 호치민 어느 곳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부를 보여주기 위한 어떠한 거만함이나 치장이 없어서 대단한 갑부란 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기자 생활로 바쁘게 지내다 2년여 만에 베트남 현지의 한인 사업가를 취재하는 기회를 얻어 호치민을 다시 찾았다. 마침 그가 세부로 휴가를 떠났다고 해서, 팔자에도 없는 휴양지로 쫓아가 이틀씩이나 머물며 인터뷰를 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해외 여행자유화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한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세부에서 본 우리네와 비슷한 모습의 동양인들은 대개가 일본인이거나 대만 관광객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무리의 관광객을 발견했는데, 멀리서도 이들이 한국 관광객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약간 팔자로 걷는 모습과 떠들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여늬 관광객들과 비교되어 멀리서도 쉽게 구별이 됐고, 몰상식하고 염치 없는 행동에 씁쓸한 비애를 느껴야 했다. 18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로 관광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은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그리워진다. 그런데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친구는 가만 생각해 보면 모두 겸손한 친구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으시대던 사람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래된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절대 자찬하는 법이 없다. 자신은 늘 낮추고 주변 사람들을 칭찬하느라 바쁜 이 친구. 그는 부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모두들 이런 친구와 함께 있고 싶은 것이다. 바로 이 친구의 겸손함 때문일 게다.

모두들 자신을 치장하느라 바쁘다. 돈이 있는 티를 내고 대단한 학벌이 있음을 티를 낸다. 자신이 남보다 한 단계 위라는 것을 티를 내고 없는 티는 절대 안 보이고, 어떤 손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대단한 연줄이 있음을 티를 내고 모두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드러내 보이려고 아우성이다. 나이 탓일까?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는 군자, 그런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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