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백추(白秋)
[淸河칼럼] 백추(白秋)
  • 박완규
  • 승인 2012.10.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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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는 시각은 색깔에서 동서양 차이가 있다. 가령 헤세는 '9월'이라는 詩에서 가을을 오직 황금색으로 칠했으되 키츠가 '9월이오면'에서 읊은 가을은 푸른색이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색감으로 보면 헤세의 황금색은 중앙의 색이며 키츠의 청색은 봄, 가을은 흰색이라 할 수 있겠다.

옛 사람들은 봄을 '청춘(靑春)'이라 해서 청색으로 칠했으며 여름은 '주하(朱夏)', 즉 붉은색이며, 가을은 흰색의 '백추(白秋)', 겨울은 '현동(玄冬)'이라 해서 검은 계절로 보았다.

옛 왕조시대 나라에서 시행하는 모든 의식에서 이 계절색은 철저히 지켜졌다. 시제를 올릴 때 황제 난왕은 1월에는 파란색 옷, 4월에는 붉은색, 오뉴월 무더위를 보내고 맞는 7월에는 흰색,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에는 검은색 옷을 입어 게절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복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가을이 되면 천자는 가을방위인 서쪽(白虎)에 있는 당(堂)에 기거하면서 흰색으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검은 갈기를 가진 흰말로써 수레를 끌게 하고 흰색깃발을 수레에 꽂고 흰색 패옥을 차 시절에 순응한다 했다.

이런 옛 사람들의 가을 색깔은 우리가 가을을 말할 때 흔히 들먹이는 황금색과 그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황금색이 가을을 시각적, 육체적 풍요를 표현한 것이라면 백색은 중세 아라비아의 위대한 의사 아비스가 "무엇이든 흰색을 띤 것은 생명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듯 가을의 본질, 내면을 꿰뚫어 본 색깔이라 하겠다.

밝고 깨끗하고 모든 것을 있는대로 거짓없이 드러내 오히려 내면으로 충만한 백(白), 바로 가을은 그런 계절인 것이다.

이제 곧 산야는 오색치장으로 자태를 뽐내겠지만, 그러나 시각적이건 내면적으로건 이 좋은 계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으려는지, 대선을 앞둔 정치적 소음이 너무 심해 걱정이나.

옛 송나라 때 사람 사강락(謝康樂)은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고 싶은 생각, 마음 즐거운 일, 이 네가지를 겸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말 그런 모양이다.

정작 국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전국을 돌며 대선입내 경선이내 호들갑 떨면서 상호 비방과 폭언을 일삼는 지저분한 대권후보자들 입에 백색 마스크를 씌울 수만 있다면 그런대로 네가지를 겸할 수 있으련만,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속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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