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Ⅰ
[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Ⅰ
  • 박완규 주필
  • 승인 2012.07.0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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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Ⅰ

죽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나긴 죽음의 세월 속에 누구를 만나게 될까 두려워 죽음에 다가서는 것이 두려웠다.

기나긴 인생의 삶에서도 누구를 만나서 평생을 같이 걸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두려움은 오히려 살아있기에 더욱 가슴을 죄어오고 또 누구를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기에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젊은 날에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한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올바른 진리를 터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젊은 날에 좋은 친구를 만나야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평생 서로 의지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친구는 서로 마음의 진실한 벗이 되어 무엇이든지 마음 문을 터놓고 의논도 하고 충고도 하면서 서로가 잘 되는 길을 일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벗은 낙엽지는 가을에는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의 행렬처럼 외로움의 눈물들을 같이 뿌릴 수 있다.

봄 날 무수히 피어나는 산골의 진달래처럼 생동의 환희를 느껴 감격의 즐거움에 서로 손잡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도 더 소중한 젊은 날의 만남은 진정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이다.

사랑하는 이와 만나게 되는 일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도 하고 새사람으로 태어나게도 하고 죽음의 세월을 살아가게도 하는 것이다.

내 곁에서 살아가는 이웃의 한 부부는 우연하게 버스에서 만나서 결혼하여 살고, 다른 이웃은 교회의 성가대에 끼어 있다가 서로 만났다.

건너 집 쌀가게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시장 한 가운데에서 순대를 사먹다가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 결혼해서 살고 있다.

예컨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는 새로운 삶을 낳게하는 한 매듭이 된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만남 그자체만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팅은 지극히 합리적인 만남의 시도지만 속을 알 수 없이 겉만 보고 만나야 하는 어리석음이 담겨있다.

무도장에서 서로 쳐다보고 춤을 추지만 관능의 몸짓이 서로를 교감시킬 뿐 기나긴 삶의 행로에 한 가닥의 의미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만남은 오로지 이기적인 자기의 필요성에 의해 인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밥을 찾듯이 필요조건에만 의존하는 만남은 진정한 삶을 샘솟게하는 인간끼리의 교감을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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