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古宅❶] 전주의 자랑, 백년을 이어 온 향기 학인당(學忍堂)
[한국의古宅❶] 전주의 자랑, 백년을 이어 온 향기 학인당(學忍堂)
  • 임정섭
  • 승인 2012.07.0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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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古宅❶] 전주의 자랑, 백년을 이어 온 향기 학인당(學忍堂)

서늘한 바람에 실려 거문고와 대금의 아련한 가락과 소리꾼의 구성진 사설이 담장을 넘어 골목골목 퍼지자, 그 소리에 이끌려 귀명창 어른들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정든 옛집으로 모여들었다.
지난 늦가을, 전주한옥마을에 의젓이 앉은 학인당에서 이 집이 세워진 지 백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가 열렸던 것이다. 이 집이 존재하게 된 본래의 목적이었던 공연장으로서, 옛 시간을 찾아가는 뜻 깊은 공연이었다.

 
학인당은 1908년 기울어가는 조선 왕조의 꽃그늘 아래서 태어나, 막 불어오는 서구 문명의 바람을 맞으며 늙어온 집이다. 학인당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전설과 역사,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마련인데, 전주사람이라면 혹은 한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무엇보다 학인당은 한강 이남에서 민간인이 살던 집 가운데 가장 화려한 고택으로 손꼽힌다. 2천 평 땅에 쌀 4천석을 들여 궁궐에서만 허용되었던 호박 주춧돌과 두리기둥으로 지어진 99칸 집이었다. 본채는 절집의 대웅전에서나 사용되었던 대들보가 7개나 되는 칠량집으로 대청마루에 앉아 올려다보는 천장의 높이는 아득하기만 하다. 게다가 문과 문틀을 모두 들어내면 28칸에 이르는 거대한 공연장으로 돌연 변모되는데, 이 높고 넓은 공간은 소리를 공명시키는 울림통이 된다. 학인당이 이렇듯 특별한 구조로 태어난 것은 공연과 연희를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구한말, 학인당은 명인명창들이 거쳐 가야 할 ' 판소리의 명가' 혹은 '한국 최초의 오페라 극장'으로 알려졌다. 임방울, 박녹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 등 암울한 시대에 별처럼 빛났던 소리꾼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그뿐인가? 이광열, 조기석, 강희순, 김태석, 최규상, 송명회, 김근진, 이순재 같은 기라성 같은 서예가들이 즐겨 찾아와 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글씨들을 썼던 집이다. 또한 한국화단을 수놓았던 이상범, 이남호, 변관식, 이용우, 허백련 등이 고준담론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 옛날에는 전라도에 부임했다 떠나는 모든 벼슬아치들의 환송회가 열리고 당대를 호령하는 정치가와 권력가가 꾀어들던 곳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김구 선생이 찾아와 묵었고 최근에는 캐슬린 주한 미국대사가 이 집에 머물러, 영빈관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학인당은 그야말로 전통문화와 시대정신이 담긴, 살아 있는 역사책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한 명성과 떠들썩한 소문의 너울을 걷어내고 학인당을 찬찬히 살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집의 고즈넉하고 품위 있는 자태에 사로잡힌다. 긴 행랑채를 거느리고 우뚝 솟은 솟을대문에는 오색단청을 입혔고, 홍살문에는 김돈희의 또랑또랑한 글씨체로 <효자승훈낭영릉참봉수원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水原白樂中之閭)>라고새겨진 현판이 걸렸다. 이 집을 지은 백낙중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정려각과 솟을대문이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대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풍당당한 솟을대문 한쪽에 난 작은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훤칠하고 살풋굽은 노송 몇 그루가 손님을 맞는다. 우리나라 땅의 형상을 빼닮은 연못 둘레엔 키 작은 나무와 철따라 앙증맞은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있다. 정성껏 꾸며진 이 옛 정원에는 근사한 박우물이 있다. 샘을 둘러싸고 높직이 쌓아올린 아름드리 돌에는 푸릇한 이끼가 곱게 덮였다. 황금빛 도는 돌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홀연 계곡에 들어선 듯한 서늘함과 아늑함 속에 옹달샘이 들어앉아있다. 땅 밑으로 내려가 있다고 해서 땅샘이라고 불린다.
땅샘은 얕아서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를 사용하거나 손바닥이나 넓은 나뭇잎으로 물을 떠서 마실 수 있다. 차고 단물을 마시고 갈증을 던 후에는 가슴과마음이 오롯해지고, 거울 같은 우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명상에라도 가뭇 잠겨들 법하다. 한여름에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학인당 여주인은 예전의 운치를 살려 지금도 여름철이면 이곳에 수박이며 참외, 김치통 등속을 넣어두는 자연산 냉장고로 이용한다.

우물마루로 된 복도를 따라 뒤쪽으로 돌아가면 다락방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여느 나지막한 다락방과는 달리 이곳 다락 안은 천장이 높아 이층으로 되어 있다. 맨 위쪽 다락은 3층이 되는 셈인데, 그 꼭대기에 빛이 들어오는 예쁜 광창이 달렸다. 이 창을 열고 밖을 내다 보는 순간 "아!" 하는 소리가 절로 터진다. 전주천이 굽어 돌아나가고 저 멀리 남고산성이 눈앞으로 불쑥 다가오는가 하면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웅굿중굿 산들이 남쪽으로 달려가는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학인당 주인 양주는 언제나 이 집의 안팎을 가꾸며 손님맞이에 눈코 뜰 새 없다.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하고, 다도를 비롯해서 전라도 소리 한가락 혹은 전통 춤사위 등 아주 특별한 체험을 준비해놓기 위해서다. 두 부부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과 더불어 학인당의 역사를 날마다 새롭게 덧써나가며 온고지신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까닭에 분망한 생활을 즐거이 감내한다.

학인당은 이 집의 진면목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대문을 열고 반가이 맞는다. 남부시장에서 향교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학인당 솟을대문이 나선다.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하룻밤 묵으며 저마다 특별한 체험을 해보자. 그러면 학인당은 자분자분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록새록 새 이야기의 살을 덧붙이며 끝없는 이야기를 써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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