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Ⅱ
[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Ⅱ
  • 박완규 주필
  • 승인 2012.07.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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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河Essay] 만남이라는 의미에 관한 소고Ⅱ

아직은 젊은 날이기에 어떻게 하면 만남의 진실한 세계를 맛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은 오늘에도 가끔 왜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아들 딸 낳고 살아간다는 일 저편에 한 인간과 인간이 운명의 족쇄에 같은 발을 묶어두게 한 만남에 대해 명쾌한 의미를 젊은 날에 지니고 있지 않았나를 생각하게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만 해도 추억록이란 게 유행한 적이 있다.

제대할 시기가 가까와오면 형형색색의 도화지를 전우들에게 나눠주고 서로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남기는 글을 써서 주고받게 된다.

지금도 서재의 한 구석에 꽂혀있는 추억록을 펼쳐보면 어느 전우는 '잘먹고 잘 살아'라고 써 놓고, 또 어떤 이는 '청초한 애인을 찾아'라는 싯귀같은 글도 있다.

한 장 한 장 마다 군대에서 만난 전우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과의 병영생활에서 생긴 애피소드들이 피어나 가슴 가득 아련한 회상의 꽃이 만발하게 된다.

추억록에 남겨진 글을 보면서 이들과 교감했던 수없는 일화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반문하면 마치 왜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는가처럼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분명한 해답이 없다는 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의 독특한 눈에 의해서 마련된 만남이기에 오늘의 시각에서 잡혀지지 않을 뿐이다.

가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이와 비슷하게 시각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며 이 차이를 우리는 흔히 세대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세대차이라기 보다 젊은 날에는 순수하게 인간 그 자체만을 보려는 뜨거운 열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은 낭만적이라고 느끼고 철썩 때리고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속에 뛰어들어 깨지고픈 파멸도 아름다움으로 떠올리는 것도 젊은 날에 지니는 독특한 감성의 하나이다.

이 독특한 감성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순수하다는 점이다 순수는 때묻지 않음을 의미하며 더렵혀진다는 것은 늙음의 이야기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은 자아의 보존이라는 담을 쌓게 하는 것이니 이 담을 쌓노라면 때 묻었다는 소리를 듣게되는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엔 '얘' '재'라고 친구를 부른다 옆동네 사는 낯선 아이라도 자기 또래면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하여 직장이나 대학에 가면 '얘' '재'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격이라는 담에 둘러쳐져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담의 안쪽에 있는 자아는 남에게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 하고 무식한 부분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물지 않은 인격이기에 서로의 부족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수 있고 허물어진 세계를 펼쳐보이면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날에 지닐 수 있는 이 순수함의 의미는 깨끗하다는 뜻 보다는 세속적 이기주의나 순간적 쾌락주의나 아니면 본능적 충동에 매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숭고한 자기실현의 욕구로 불타고 진실에 가슴 두근거리고 철저한 사랑의 의미에 밤을 새우는 순수를 뜻하는 것이다.

하여 젊은 날 누구와 만나는 일의 기본은 순수에 터전을 잡음으로써 첫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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