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㉙>여름휴가 단상
<좋은아침㉙>여름휴가 단상
  • 최영진
  • 승인 2012.08.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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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침㉙>여름휴가 단상

 
땅에도 휴가(休暇)를 준다. 지력(地力) 감퇴를 막기 위해 재배를 중지하는 게 휴한(休閑) 또는 휴경(休耕)이다. 사람의 생산성과 창조력 향상을 위해서도 쉬어야 하고 휴가가 필요하다.

중국 한(漢)나라는 관리들에게 닷새에 하루의 휴가를, 당나라 때는 열흘에 하루씩 집에서 쉬며 목욕을 하도록 했다. 그런 휴가가 '휴목(休沐)'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한나라는 일찍이 '5일 근무제'를 실시한 선진국인데 반해 당나라 사람들은 열흘씩이나 목욕을 하지 않은 미개인이었다는 증거가 아니던가.

‘휴가’하면 여름 휴가이고, ‘휴가 인구 이동’하면 유럽부터 연상된다. 결혼 때도 15일씩이나 휴가를 주는 프랑스는 6천만 인구의 약 절반이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을 전후해 평균 5주간의 바캉스를 시작, 개미떼처럼 대이동을 전개한다.

그들의 대 출발을 ‘그랑 데파르(grand depart)'라 하고 그 이동 모습을 ‘라 트랑쥐망스(la transhumance)’라 한다. 개미떼가 아니라 양떼라 일컫는다. ‘트랑쥐망스’가 ‘고산지방으로 양떼 몰기’ ‘이동 목축’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엑소더스 양떼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언론인도 끼여 있어 파당(派黨)과 정쟁(政爭)도 중단되고 유명 사회자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도 중단된다. 신문 지면 역시 대폭 줄어든다.

1997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볼가강 유역 별장에서 한 달간 여름 휴가를 보냈고, 그 해 콜 독일 총리는 4주간, 미국의 클린턴, 영국의 블레어, 프랑스의 시라크는 3주씩 쉬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직전인 2001년 8월에도 유유히 한 달간 바다낚시와 농장 일 등으로 보냈고 작년에도 거의 한 달간 휴가를 즐겼다.

8천만 독일인들도 연평균 6주간의 휴가 중 대부분을 여름에 보내 도시의 공동화(空洞化)에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서방 선진국 신문의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이 ‘고스트 타운(유령의 도시)’으로 붙기 일쑤다.

미국인의 여름 휴가도 한 달 간 느긋하게 주어지는데, '서배티컬 리브(sabbatical leave)'라고 해서 대학 교수 등의 연구와 여행을 위해 7년마다 1년씩 주는 휴가도 있다.

기업들도 재충전, 인푸트(input)를 위해 비슷한 장기휴가를 준다. '서배티컬 이어(sabbatical year)'라는 유태인의 안식년(安息年) 또한 7년만에 1년씩이고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도 7년에 한 해씩은 꼭 쉰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초 일본 도쿄가스, 후지제록스, 닛폰IBM, JAL 등은 최장 2년까지의 유급 봉사활동 휴가를 주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휴가는 평균 1주일이지만 열성들이다. 요즘의 일본이야 장기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安) 근(近) 단(短)’으로 ‘싸게, 가까운 곳에, 짧게’ 다녀오는 게 유행이지만 호황의 극치를 누리던 1988년만 해도 대단했다.

그 해 일본교통공사의 추계에 의하면 인구 1억2천만명 중 7천400만명이 여름 휴가 비용으로 3조엔을 썼고 165만명이 해외로 나갔다. 그들의 해수욕 인파 묘사가 흥미롭다. ‘꼭 감자 씻는 것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우리네 직장인의 여름 휴가도 절정에 달했다. 예년에 비해 유달리 찜통더위인 까닭에 이번 여름 휴가는 서울에서만 900만명 이상이 산과 바다와 계곡으로 떠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휴가란 4계절 어느 때든 필요하고 휴식도 매일매일 어느 때든 필요하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하얀 겨울’에 떠날 수도 있고, 낙엽을 밟으며 휴가의 ‘휴(休)’자에도 어울리게 나무에 기대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게다.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A=X+Y+Z'라고 대답했다. A가 인생이라면 X는 일, Y는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Z는 무엇일까. 그게 바로 '침묵(沈默)'이라는 것이다.

꽉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멀리멀리 달려 바닷가로만 가야 맛이고 멋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의 무리한 일정은 자칫 지치기 쉽고 비용만 날릴 수 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대청마루, 거실 바닥에 기다랗게 누워 밀린 책을 보거나 끝없는 침묵 속에 침잠(沈潛)해 보는 그런 휴가는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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