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㉞>하로동선(夏爐冬扇)
<좋은아침㉞>하로동선(夏爐冬扇)
  • 최영진
  • 승인 2012.08.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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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침㉞>하로동선(夏爐冬扇)

 
문명의 이기에 묻혀사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멋과 해학이 물씬 묻어나는 고유의 향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그 단적인 예가 부채다.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려 그 자취가 없어진지 오래다.

부채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자와 가는 대나무라는 뜻의 ‘채’자가 어우러졌다 한다. 동양에서 옮겨간 부채를 서양 사람들은 진주 비단과 함께 귀중한 품목으로 여겼다. 손자 손녀들에겐 선들바람으로 무더위를 식혀주는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른들에겐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서화가와 장인(匠人)들에겐 혼신의 땀이 배인 예술품으로 빛났다.

이처럼 삶의 철학이 배어나는 부채의 쓰임새. 이를 집약해 전해지는 것이 부채의 덕목이다. 그 첫째는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쫓아준다. 둘째, 모기나 파리를 후려쳐 잡게 한다. 셋째, 곡식이나 음식이 담긴 그릇을 덮어준다. 넷째, 길을 걸을 때 뜨거운 햇볕을 가려준다. 다섯째, 바람을 일으켜 불을 지펴준다. 여섯째, 땅바닥에 주저앉을 때 깔고 앉을 수 있게 해준다. 일곱째, 청소할 때 쓰레받기가 되어준다. 여덟째, 물건을 머리에 일 때 똬리 대신 사용된다. 이를 부채의 여덟 가지 덕목이라 한다.

부채는 뭐니뭐니 해도 여름에 제격이다. 겨울엔 화로가 제격이듯. 이와는 달리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옛말이 있다. 여름철 화로와 겨울철 부채라는 뜻이다. 소용 없거나, 철에 맞지 않는 사물이나 재주 등을 비유하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은 “여름철 화로도 젖은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철 부채도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사용하기에 따라 무용지물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하로동선’은 당장 필요치 않지만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과 동의어로 간주되기도 한다. 여름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겨울엔 이듬해 여름을 준비하듯.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장기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기에 2012 런던올림픽의 응원열기까지 더해 이래 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은 4년간 흘린 땀의 댓가를 얻기위해, 국민의 열망에 보은하기 위해 마지막 땀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 여름철 화로가 따로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에게 경의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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