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㊼>뭔가 이룬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좋은아침㊼>뭔가 이룬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 최영진
  • 승인 2012.08.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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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침㊼>뭔가 이룬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연암 박지원에게 대구 판관으로 있던 친구가 편지를 했다. 늘그막에 지방 관리가 되었지만 일이 많아 고달프기 그지없다, 더구나 영남 전체에 흉년이 들어 진휼 사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쩌다 출세했다고 좋아했더니 왜 하필 이런 흉년이 들어서 나의 지방관 생활을 망치냐고 투덜댔던 모양이다.

연암은 이렇게 응수한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리 학식과 재능이 있어도 아무 쓸모없다. 그리고 막상 과거시험에 하늘의 별따기로 합격하여 고을 수령으로 나가더라도, 판공비가 넉넉한지 쪼들리는지 그런 거나 속으로 셈하고, 토산물의 유무나 물어보는 정도가 대부분이어서, 그 처신이 천박하기 짝이 없다.

상급기관의 지시를 따르기에 급급하고, 인사고과 할 때 꼴지가 될까 두려워할 뿐, 고을의 폐단이나 백성의 고통 따위는 마음 쓸 겨를도 없고, 설령 그 병폐를 바로잡고자 해도 결정권이 자기 손에 있지 않으니 어쩔 방법도 없다.

그러니 능란한 사람은 장부처리나 조심하고 창고관리나 엄중히 하여 죄나 안 지으면 다행으로 여긴다. 어느 겨를에 대체 무엇으로, 단 한번이라도 진정 백성을 위해 일하겠는가?

그런데 그대나 나나 과거급제는 대과든 소과든 하질 못했고, 유생이라지만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양반이란 명색이 부끄러울 정도로 따분하게 늙어가다가, 늘그막에 천만 뜻밖의 명을 받아 지방관이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게다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대흉년을 만났으니,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려던 평생의 포부를 펼칠 기회가 이제야말로 온 것이다. 두 가지 기회를 하늘이 한꺼번에 주신 셈, 씀바귀도 냉이처럼 달게 여겨야 할 판에 어쩌자고 불평불만 늘어놓을 틈이 있는지?

“내 신세를 돌이켜 보건대 오십년 동안 겨우 끼니를 때우고, 쌀독도 자주 비어 내 몸도 주체하지 못하던 주제에, 임금의 은혜를 두터이 입어 갑자기 부자 영감이 되어, 뜰에는 수십 개의 가마솥을 벌여 놓고 1400여명의 못 먹어 부황 들어 쓰러져가는 동포들을 불러다가 한 달에 세 번씩 먹이는 즐거움을 실컷 누리니, 즐거움치고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소?…

이제 나는 즐거울 ‘락(樂)’ 한 자를 쓰니, 무수한 웃음 소(笑) 자가 뒤따릅디다…이 편지를 개봉해 보는 날에 그대도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니, 나를 소소선생(笑笑先生:껄껄선생)이라 불러준대도 역시 마다하지 않겠소.”

연암은 위기 상황에서 웃고 즐기며, 상황을 반전시킬 일감을 찾아냈다. 연암이 이렇게 즐거이 구휼사업에 몰두한 결과는 물론 좋아서, 나중에 중앙에서 추가로 보내주겠다는 구휼미를 거절했을 정도다.

뭔가 이룬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자신의 올챙이시절을 잊지 않고 할 일을 찾아내 즐겁게 몰두했던 것. 연암의 마인드를 흉내내보면, 이 세상에 보잘것 없는 내가 일거리를 가지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어찌 감사하는 웃음이 절로 우러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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