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이제 가을을 노래하자
[淸河칼럼] 이제 가을을 노래하자
  • 박완규
  • 승인 2012.09.07 0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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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그냥 ‘가을’인가. 아니다. 사계절마다 그 속성에 어울리는 감탄사가 있다.

봄은 기다림의 탄성으로 ‘오, 봄이여!’가, 여름은 무더위의 거부감으로 ‘우, 여름이네!’가, 겨울은 혹한 살벌함으로 ‘으, 겨울이라니!’ 라야 제격이다. 그러면 가을은? 가을은 영탄의 심호흡을 깊게 하는 ‘아, 가을이다!’ 이어야 한다.

가을(秋)은 벼이삭(禾)이 황금 불길(火)로 타오르는 결실의 계절이자, 떨어지는(Fall) 낙엽에서 떠남을 예감하는 이별의 계절이다. 이 풍요와 쇠락의 이율배반성으로 가을은 인간에게 불면의 긴 밤을 마련케 한다.

그러면 상심(傷心)의 가인(歌人)이요, 고뇌의 대리자인 시인 릴케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 지나간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 … /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가을의 노래를 시작한다.

시인들의 가을노래는 ‘기도’가 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사랑하게 하소서 / 호올로 있게 하소서’(김현승), ‘가을의 기도는 / 잎 떨어진 나무 아래서 / 자신을 비우는 일입니다’(이성선). 이 기도에 다른 시인들이 화답한다. ‘지금은 가을 / 우리 잠시 이별을 하자’(김형영), ‘잃을 줄 알게 하소서 / 가짐보다는 /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유자효).

시인의 기도는 경건하다. 한결같이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다 내어주고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성자(聖者)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 얼마나 가지려고만 애썼던가. 돈과 권력을, 명예와 지위를 그 얼마나 탐했던가. 가을에도 이를 떨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득권자들의 나무들을 보라. 그 얼마나 누추한가.

우리의 지나간 여름도 사상 유례가 없는 혹서(酷暑)가 잔인하게 위대했다. 뒤를 이어 여야 대권후보들의 아이러니한 제살깎기식 상호비방에다 왜놈들의 터무니없는 독도영유권 주장 등이 단풍에 앞서 온 나라를 진홍색으로 물들였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미치광이들의 무차별 성폭행과 묻지마 살인이 가뜩이나 혼란한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태권도 사회도 올 연말로 예정된 각 시도협회장 선거에다 대한태권도협회장 선거, 그리고 내년의 국기원장 선임까지 각급 단체 수장이 되겠노라고 벌써부터 설쳐대고, 여기에 줄 좀 대 보겠다고 나대는 인간군상이 가관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의 가을노래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릴케). 가을은 ‘혼자’의 외로움을 깨달은 사람에게 ‘더불어’의 즐거움을 일러준다. 탐욕과 아집, 편견과 일방, 배타와 불신, 갈등과 불화는 모두 ‘나 혼자’ 만의 소산들이다.

보수니 진보니, 이념이니 개혁이니, 지나고 보면 한 조각 뜬 구름 같은 허망함에 다름 아니거늘 거기에 그토록 열정을 바치다니. 한국 정치사든 우리네 태권도사에는 뜨거운 ‘여름’만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하니 ‘가을’을 얘기하자는 것이다.

봄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여름은 폭군, 가을은 현군(賢君), 겨울은 독재자다. 우리 태권도계는 ‘가을지도자’를 가져보지 못했다.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귀는 없고 입만 있는 지도자들에게 가을은 무수히 떠남의 예의와 비움의 교훈을 일러 왔다.

생장노사(生長老死)의 인생여정은 춘하추동으로 압축된다. 가을은 노년의 지혜가 덕성으로 완숙되는 단계다. 인생의 가을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사리분별에 미숙하다. 그 미숙함들이 그 미숙성으로 노숙함을 내몰고 있는 이상기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기야 우리 태권도사의 절기는 아주 짧았던 ‘민주화의 봄’을 빼놓고, 일인 독선의 여름과 부화뇌동의 겨울만 반복되었다.

왜 천재시인 휠덜린은 ‘가을을 한 번만 더 주옵소서’라고, 릴케는 왜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염원했을까. ‘가을’ 만이 영혼의 갈증을 가셔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현실 앞에 그나마 위안거리는 최근 영국의 런던에서 올림픽 승전보를 날려온 우리 국가대표 선수단의 활약상이다. 특히 총-칼-활-투기종목에서 매 경기마다 보여준 투혼은 모두가 시름에 빠진 이 가을 초입에 한순간이나마 신선한 바람을 선사해줬다. 비록 태권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 신바람은 곧 멎고 슬픈 현실이 문지방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을이 왔다. 내년 봄까지는 16개 시도 및 군소도시 협회장 선거, 중앙협회장 선거 등 각종 선거바람이 우리 태권도사회를 어지럽히리라. 더구나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맞물려 있으니 오죽하랴마는.

그래도 우리는 ‘가을’을 읊어야 한다. 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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