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말을 다스려라
<淸河칼럼> 말을 다스려라
  • 최영진
  • 승인 2012.10.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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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河칼럼> 말을 다스려라

요즘 TV만 켜면 거북해진다. 이름 있는 출연자나 길거리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일반인들이나 예외없이 하는 말버릇 때문이다.

“설이 눈앞에 온 것 같아요.”, “하루에 전화가 20통은 오는 것 같아요.”,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이해가 된 것 같아요.”….

‘~같다’는 애매한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젠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 않고 쓰는 것 이상으로 흔하게 들어야 하는 말이 됐다. 물론 이 말도 꼭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문제는 너무 쉽게, 생각 없이 뱉어낸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는 말하는 사람들이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추석이 눈앞에 왔다.’ 혹은 ‘이제 이해가 됐다.’고 하면 명확한 말을 ‘같아요.’를 써서 얼버무려버린다. 밑바탕엔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말하는 사람은 이런 의미가 담긴 말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느 한 홍보회사의 입사시험 면접장에서 있은 일이다. “왜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고 합니까?”란 면접관의 질문에 수험자는 “앞으로는 분명 광고와 홍보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홍보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불합격이었다. 이유는?

수험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말을 다스리지 못했다. ‘홍보 일을 하는 것도’와 ‘괜찮겠다.’라고 한 것이다. ‘홍보 일이 좋다.’ 혹은 ‘홍보 일이 적성에 맞다.’는 것과 ‘홍보 일도 괜찮다.’고 한 것은 조사 하나의 차이지만 품고 있는 뜻은 천양지차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에서 저자 김정빈 씨는 이렇게 풀이했다. ‘홍보 일도 괜찮다.’고 한 것은 꼭 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보다 당장 취업이 급하기 때문에 이 일이라도 주어지면 어쩔 수 없이 해보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면접관은 이 말 한마디로 수험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다.

이처럼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다. 확신없이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이 일도 괜찮다.’고 한 것이나 자기 의중을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말을 보면 한 사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

몇 해 전인가. 출간 이후 매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무지개원리’에서 차동엽 신부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자기계발 비법서인 이 책에서 차 신부가 이야기하는 무지개원리는 7가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지혜의 씨앗을 뿌리라, 꿈을 품으라, 성취를 믿으라, 말을 다스리라, 습관을 길들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등이다. 인생의 7가지 성공원리 가운데 ‘말을 다스리라.’는 것을 다섯 번째로 꼽은 것은 말 속에 나의 인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이 어떻게 해서 100쇄까지 출간을 하고 국내 CEO 1천910명이 선정한 추천도서 20선에 올랐을까? 최근 말을 다스리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 아닐까?

정당의 대변인들조차 ‘~는 것 같다.’를 수시로 발표하고 책임질 위치에 있는 분들의 말실수도 잇따른다. 아무 말이나 해대고 뒷책임은 나몰라라 한다. ‘깜’이 되는 말인지, ‘깜’이 되지 않는 말인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과연 말을 다스릴 줄 아는 ‘깜’이 되는 분들인지 되묻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 ‘무지개원리’라는 책을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는 분들에게 권한다. 아니 이분들이 ‘올해 안에 꼭 읽어야 할 책 1순위’에라도 선정해주고 싶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깜’이 되지 않는 말을 쏟아낼지 걱정해서다. 이 책을 읽고 말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치라는 의미에서다. 이분들의 말실수는 연예인 김흥국의 엉뚱한 말실수처럼 웃음을 선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는 말을 잘 다스리면 내 인생에 무지개가 뜬다고 했다. 그러나 말을 다스리지 못해 부정의 말, 미움의 말, 저주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되돌아온다는 진리를 이분들은 잊고 있다.

새삼스레 ‘말을 다스리라.’고 강조한 것은 정치권에서 오가는 말들이 지금 너무한 것 ‘같아서’가 아니라 위험수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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