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글쓰기의 괴로움
<淸河칼럼> 글쓰기의 괴로움
  • 최영진
  • 승인 2012.11.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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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河칼럼> 글쓰기의 괴로움

근자에 한 지방일간지의 '문화산책' 필진으로 선정된 지인이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고충을 털어놓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몸살까지 날 지경인데, 석 달 동안 매주 한 번씩 쓸 것을 생각하니 아찔해 글을 쓰겠다고 허락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외부 필진 대부분이 글쓰기의 고통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글을 매일 쓰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는 말도 한다.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당신이 글까지 잘 쓰면 글 쓰는 것이 업인 이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는 했다.

물론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라고 글을 쉽게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창작의 글은 아무리 써도 어렵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수필가든 마찬가지다. 쉽게 글을 쓴다는 작가는 본 적이 없다. 하나같이 글쓰기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기자도 그 축에 들지 모르겠다.

'한국문학 사상 최단기간 내 100만부 돌파 소설'이라는 '엄마를 부탁해' 작가 신경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책상에 앉아있을 나를 생각하면 너무 절망스럽죠. 내가 또 해낼 수 있을까, 이걸 또 뚫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작품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공포를 느낄 지경까지 가요. 끊임없이 그래요. 그래도 이 일을 하는 건 뭔가 자신이 행복해지기 때문이겠죠."

고통 속에서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도 함께 말하고 있다. 팬이 적지않은 시인 김선우씨가 지난달 동숭동에서 지인의 주선으로 오붓한 작품 낭독회를 가진 일이 있다. 참석자들과 대화 시간에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면 팔 하나를 자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표현했다. 쉽게 바로 나오는 글은 결코 없음을 강조했다.

중국 송나라 구양수는 글을 지으면 벽에다 붙여놓고 볼 때마다 이를 고쳤는데, 완성되고 나면 처음의 것은 한 글자도 남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소동파가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단숨에 지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글을 짓느라 버린 초고(草稿)가 수레 석 대에 가득했다고 한다.

그 어려움이 어떠했겠는가. '다섯 자의 시구를 읊조리느라(吟成五字句)/ 일생의 심력을 다 바치었네(用破一生心)'라거나 '한 글자 알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비벼 끊었던가'라고 읊은 옛날 시인들도 있다. 독자에게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주는 문장들은 이같은 고통을 거름으로 탄생한다.

독서의 계절이라 피말리는 글쓰기의 고통이 더 각별히 다가온다. 읽는 독자들이야 호젓한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편안히 보겠지만, 쓰는 작가들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비벼 끊어낸 수염'이 곳곳에 수북이 쌓였을 것이다.

남발되는 글이 아니라, 이런 천사만려(千思萬慮) 끝에 나오는 좋은 글들이 더 많아지고 널리 읽혀지면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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