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한 WTF 시범단장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주인공'
나일한 WTF 시범단장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주인공'
  • 류갑상
  • 승인 2013.10.0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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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한 WTF 시범단장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주인공'

 
두번의 복역으로 뒤바뀐 인생을 이겨내고 당당히 세계에 태권도와 한국을 알리는 태권도 홍보대사가 있다.

중국 태권도협회 기술고문이자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을 이끄는 나일한 단장(50·공인 7단·사진).

그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는 마치 TV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다.

10일 충북 옥천군민체육센터에서 시범단 공연을 마친 나 단장의 얼굴은 태권도인의 자부심과 그의 고향 옥천에 대한 향수로 묻어 있었다. 이날 시범단 공연은 ‘군 지명 사용 600주년’과 ‘제38회 중봉충렬제’를 기념해 옥천의 부름을 받아 이뤄졌다. 시범단의 공연이 1년 내내 국외에서 전개되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북의 산골에서 열린 이번 옥천 공연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미 잡힌 일정을 미뤄두고, 한걸음에 시범단을 옥천으로 데리고 온 그의 고향사랑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 단장은 옥천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에 처음 생긴 태권도 도장 사범의 권유로 처음 도복을 입었다.

옥천 중학교 시절 전국소년체육대회 2관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각종 전국대회서 금메달을 줄줄이 목에 걸며 태권소년으로 성장해 갔다. 서울체고를 거쳐 태권도 명문 경희대 태권도학과(1기)에 입학해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한 마디로 그의 태권도 인생은 ‘대박’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5년 국제대회 출전을 앞두고 부친의 임종 소식을 들은 나 단장은 옥천으로 내려와 장례를 치렀다.

이때 우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찾았던 한 주점에서 우발적인 폭행사건이 일어났다. 몇 번을 참으면서 술을 마시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둔기가 날아들었고, 순간 그의 발도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차! 하는 마음에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옆자리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숨을 거두면서 그는 태권도복이 아닌 수의를 입어야 했다. 재판부는 우발적인 당시 상황을 고려해 그에게 7년 형을 선고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준비하던 대표선수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지만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야 했기에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낳아 준 부모님과 선후배를 떠올리며 이를 꽉 물고 재기를 꿈꾸었습니다” 특히 나 단장은 조정원 현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의 격려와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다.

7년간의 복역을 마친 나 회장은 이런 조 회장의 도움 속에 13년 만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또 한 번 시련을 겪는다.

조직폭력배들을 소탕하던 98년 존재하지도 않은 일명 ‘일환이파’ 두목으로 지명돼 구속되고 말았다. “그때 저는 유럽 각국을 돌며 태권도를 알리는 평범한 체육인이었는데, 조폭 두목이라는 혐의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나 단장은 결국 고법까지 가는 1년간의 재판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아 누명을 벗었지만 수많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중국 정부의 제의를 받고, 중국 태권도협회 기술고문을 맡아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중국 정부가 그를 중국 태권도협회 한국인 기술고문으로 위촉한 것이다. 중국서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여자 대표 팀의 기술 지도를 했다. 5년 전 세계태권도연맹에서 시범단을 창단하자 조국의 태권도를 세계에 더욱 알리기로 하고 단장을 맡았다. 그는 현재 중국서 가장 중국의 스포츠를 잘 아는 한국인으로 통한다.

나 단장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만큼 남은 인생을 조국과 태권도 발전을 위해 바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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