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안부 소녀 동상 철거 반대운동에 즈음하여
[기고] 위안부 소녀 동상 철거 반대운동에 즈음하여
  • 니콜라
  • 승인 2014.01.27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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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안부 소녀 동상 철거 반대운동에 즈음하여
최근 한국의 상황은 과거 구한말의 상황과 같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압박해 오는 열강들의 각축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호전적인 핵을 가진 북한과의 대립이라는 숙명적인 분단민족의 비극적 압박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상호 비방을 함으로 소모적인 부정적인 자세를 가지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익을 위해 중지를 모으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곳 보스톤은 일찍이 로웰 지역을 중심으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향하여 미국이 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산업혁명의 중심지역이었다. 또한 여러 공장에서 일했던 언니, 누나, 엄마들의 월급으로 자식들과 동생들이 하버드, 보스톤대학교, NEC 등에 보내져서 학업에 정진 한 후 미국 사회의 지성의 혁명을 더하여 미국이 진정한 대국으로 일어서게 된 것이다.

보스톤 동포사회가 한인회, 한미 시민협회, 과학기술자협회, 한국학교 등에서 인재를 후원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살펴보면 비사 속에서 일찍이 선진 열강을 인식한 지혜로운 명성황후가 젊은 선비들을 로웰 지역으로 파견하여 산업 선진 문물을 파악하게 한 기록이 있다.

비록 이것이 연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제에 의하여 좌절되었으나 우리는 그분의 뜻을 기리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 상황을 혼혈아의 대모라고 하는 위대한 작가 펄벅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를 독려한다. 어느날 이른 새벽 일단의 동학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실학에 심취했던 젊은 예수쟁이 선비를 찾아와 그를 광에 가두었다. 이 선비는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에게 다른 이들 보다 임금도 후하게 주었고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였는데 왜 나를 가두는 겁니까?”

그러자 이 청년 들은 말하기를 “우리도 모르겠다. 왜 꼭두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 당신을 광에 가두었는지...” 그러면서 오랜 침묵 끝에 한 말은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이 이 암울한 시대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여기에 분개한 것이요!” 나는 그 외침이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연유와 경로로 이 보스톤에 각자 오게 되었는지 서로의 형편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시대에 무언가 조국을 위해서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모두가 절박한 하루하루의 현실을 살아가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는 묵상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역할을 자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한 가지 예를 들어 우리가 무엇을 할 것 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최근 우리는 위안부 소녀 동상 철거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적어도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먼저 위안부의 수치를 회피하는 일본의 뿌리 깊은 군국주의와 황실 숭배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사망하였지만 29년을 필리핀 정글에서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투쟁했던 한 일본군의 군국주의 정신력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일본인 들이 국가와 군가가 나오면 열창을 하고 심지어 일부 한국인들조차 열정적으로 부르는 종교에 버금갈 정도의 군국주의의 망령을 과소평가해서 감정적으로 대항하는 자세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로 일본의 지나친 극우적인 행동들에 대해 어떤 접근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극단적으로는 성공 여부를 떠나 우리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 내 양심 세력과 연계하여 일본 지성 사회의 이성에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는 중국 측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이라는 성공 외교의 낭보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인 들이 극력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일본 내에 안중근 의사를 숭모하는 지성인 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그들은 하얼빈 역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할 당시 있었던 일본인들과 그 후손들인데 그 들의 증언에 의하면 “저격 순간 우리는 한 젊은 한인 청년의 얼굴에서 성자와 같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유탄에 맞았으나 아직도 몸속에 상처로 안고 그 감격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인 대처가 아닌 진실에 다가서는 일본의 지성을 깨울 때 우리에게 어떤 해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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